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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윤석열 대선 출마 선언, ‘증오의 정치’만 담겼다

등록 2021-06-29 18:27수정 2021-06-30 02:52

검찰총장 사퇴 118일 만의 기자회견
“독재정권” 날선 공격…‘비전’은 빈약
자질·도덕성 검증 본격적으로 받아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선거 도전을 선언했다. 윤 전 총장은 ‘정치 참여 선언문’ 대부분을 문재인 정부를 성토하고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할애했다. 문재인 정부는 독재정권이며,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 이권 카르텔’이 공정과 법치를 짓밟고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반문 강경 보수층’의 입맛에 맞춰 정권 비판 일색으로 선언문을 채운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자신이 구상하는 나라와 정부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비전 제시는 빈약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공정과 법치를 바로 세우겠다는 추상적 선언에 그쳤다. 검찰총장 사퇴 뒤 118일 동안 정권에 대한 증오와 적대의 언어를 벼리는 것 말고, 대선 주자로서 준비를 충실히 해온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내용이 허술했다.

그가 내세운 키워드들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다고 볼 수 없다. 그는 현 정권이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는 독재를 하고 있다며, 빼앗긴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문 강경 보수층’을 빼면 동의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공정이라는 키워드 또한, 그가 총장으로서 지휘한 ‘선택적 수사’가 과연 공정했는지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이날 정치 참여 선언으로 윤 전 총장은 검찰총장을 중도 사퇴하고 정치로 직행한 헌정사상 초유의 기록을 갖게 됐다. 지난해 2월 전국지검장회의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생명과도 같다”고 훈시했던 그가 정작 스스로는 검찰청법에 명시된 중립성의 원칙을 걷어차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총장을 지낸 사람이 선출직에 나서지 않는 관행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절대적 원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생명과도 같은’ 가치를 깨면서도 자신은 예외라고 주장하는 ‘내로남불’이다. 검사를 규율하는 법과 원칙을 새털처럼 여긴 그가 법치와 공정을 내세우고 있으니, 우습고도 슬픈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이날 회견은 ‘대선 주자’ 윤석열에 대한 검증과 평가의 필요성을 한층 일깨워준다. ‘표범이 사슴 사냥하듯’ 피의자를 수사하고 단죄해온 검찰 수장을 넘어, 국민을 통합하고 민생을 보듬을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능력과 도덕성을 갖췄는지 판단하는 건 더욱 어려워졌다. 윤 전 총장은 “선출직 공직자로 나서는 사람은 능력과 도덕성에 대해 무제한 검증을 받아야 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장모·부인과 관련한 검사 시절의 처신에 대해서도 구체적 의혹을 제기하는 만큼, 본인과 가족의 도덕성 검증 또한 ‘사생활 문제’ 등으로 피해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의 출마 선언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국민의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 없이 현 정권에 대한 비판만으로 권력을 쟁취하려는 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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