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8일 중대재해처벌법 국회 본회의 통과 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가운데)씨가 국회 본관 앞 농성장에서 연 해단식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김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29일 동안 단식 농성을 벌였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질환과 근골격계질환 등을 이 법이 정하는 직업성 질병에서 제외하는 쪽으로 시행령을 만드는 중이라고 한다. 입법 단계에서 크게 후퇴한 중대재해법을 시행령에서라도 보완해야 한다는 노동계나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용하기는커녕 외려 정반대로 가고 있다. 시행령은 이달 안에 입법예고될 거라고 한다. 시민사회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고는 안 될 일이다.
직업성 질병에 포함되면 한 해 3명 이상 같은 병에 걸릴 경우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시행령 제정안에서 그 입구를 ‘급성 중독’이라는 바늘구멍으로 좁혀놨다. 뇌심혈관계질환과 근골격계질환 등을 직업성 질병에서 제외한다는 건 쉽게 말해 산업 현장에서 이들 질환이 반복해서 발생해도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질환이 잇따라 발생하는 택배업계가 대표적이다. 또한 반도체 공장에서 유해물질에 장기간 노출돼 직업성 암에 걸려도 중대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정부안은 경영계의 주장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지난 4월 경총 등 경제 6단체는 직업성 질병을 화학물질 유출 등에 의한 질병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질환이 과로 탓인지 개인적 소인 탓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그러나 의학적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노동자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산업재해를 판정하는 경우는 없다. 정부안은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의무를 상황에 맞게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모법의 위임 사항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있다. 안전보건 인력 숫자만 맞춰놓으면 중대 사고가 나도 경영책임자와 사업주가 빠져나갈 길을 터준 거나 다름없다.
중대재해법은 입법 과정에서 적용 사업장을 크게 줄이는 등 “껍데기만 남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가 이마저 다시 후퇴시킨다면 ‘산재 사망 1등 국가’에서 벗어나는 일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2018년 말 국회를 통과한 ‘김용균법’(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이듬해 시행령에서 누더기가 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할 정부가 사실상 입법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지키려는 것이 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산업안전 모범국들을 보라. 하나같이 정부 하기 나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