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케이티(KT) 대구지사 흥해사업소 앞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김아무개(57)씨가 417㎏ 무게의 케이블드럼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포항MBC 뉴스 화면 캡처
올해 초 치명적인 산업재해의 책임자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고 지난 13일 고용노동부에서 산재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 산업안전보건본부로 확대 개편되는 등 안전한 일터를 위한 법·제도적 외형은 진전되는 듯하다. 하지만 어이없는 후진국형 산재 사망 사고의 악순환은 끊어질 줄을 모른다. 정치권과 정부의 대응 움직임이 현장에 분명한 메시지를 주기에는 역부족인 탓이다.
지난 14일 경북 포항에서 케이티(KT) 협력업체 노동자가 417㎏ 무게의 케이블드럼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크레인으로 케이블드럼을 들어 트럭에 옮겨 싣는 작업 중에 연결고리가 풀리면서 케이블드럼이 추락해 노동자를 덮쳤다. 연결고리는 철제가 아닌 밧줄이었다. 노조가 단체교섭 때 이 같은 작업의 위험성을 수차례 지적했으나 회사 쪽은 원청과 비용 탓을 하며 개선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업 현장에는 안전관리자나 신호수도 없었다. 수많은 산재 사망 사고를 통해 지적된 위험 요소들이 그대로 온존해 또 하나의 비극으로 이어진 전형적 사례다.
하루 앞서 13일에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시설 보수 작업을 하던 외부 공사업체 소속 노동자가 건물 지붕에서 25m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이 노동자는 안전 로프를 매고 있었지만 지붕 강판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걸려 끊어졌다고 한다. 이 정도면 안전 로프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추락 방지망도 없었다. 현대중공업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차례 사망 사고가 발생해 대표이사 등이 지난달 불구속 기소됐고, 올해도 두차례나 사망 사고가 발생해 노동부의 특별감독을 받았다. 그런데도 또 사망 사고가 났다는 것은 대표이사 기소든 노동부 감독이든 아무런 경각심을 주지 못했다는 반증이 아닌가.
이처럼 솜방망이 처벌과 하나 마나 한 감독으로는 산재 사망을 줄일 수 없다는 오랜 경험칙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추진됐다. 하지만 일터 안전의 키를 쥐고 있는 경영책임자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는 허술한 입법과 시행령 제정으로 기업과 산업현장에 주는 경고음은 현저히 약화했다. 이대로라면 법이 시행되는 내년에도 뭐가 달라질지 의문이다. 나름대로 큰 변화인 산업안전보건본부 출범이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실천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한탄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