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등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이재용 특별사면·가석방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진보·개혁 성향의 학자들과 시민 781명이 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특별사면·가석방에 반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 6일에는 경실련, 민변,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등 전국 1056개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이재용 특별사면·가석방 반대’ 기자회견을 전국 7개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열었다.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재벌이나 재벌 총수라고 해서 법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이 상식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광복절을 기해 이재용 부회장을 가석방하거나,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사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무부 장관 승인 사항인 가석방은 형기의 60%를 채우면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2년6개월 형을 선고받은 이 부회장은 28일이면 이 요건을 채우게 된다. 특별사면은 법무부가 사면심사위원회를 거쳐 대상자를 대통령에게 제청하고, 대통령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한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나 특별사면은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 정신’에 역행한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부른 국정농단 사건에서 86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해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선 후보 시절 문 대통령은 “재벌의 불법 경영승계, 황제경영, 부당 특혜를 근절시키겠다”며 “횡령·배임 등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과 사면권 제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된다. 또 공약의 취지에 비춰볼 때 가석방도 함부로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지난 5월10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경제단체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사면 요청에 대해 “충분히 국민들의 많은 의견을 들어서 판단해 나가겠다”고 밝혀 우려를 낳았고, 지난달 2일 4대 그룹 총수와 오찬 때는 “고충을 이해한다. 국민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고 대답해 우려를 더욱 키웠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외에도 경영권 불법 승계와 관련해 부정 거래, 시세조종, 회계분식 등의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또 실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는 사람에 대해 가석방이나 사면을 거론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재벌의 금력 앞에 법이 무릎 꿇는 시대는 끝났다고 정부와 문 대통령이 분명히 대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