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54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올해 ‘세법 개정안’을 26일 발표했다. 법인세(1조3064억원 감세)와 소득세(3318억원 감세)를 중심으로 세수 효과가 마이너스 1조5천억원 규모인 ‘감세안’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제주체들이 많아 내년에도 세금을 깎아줘야 할 곳이 적잖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재정적자 규모가 매우 커졌고, 앞으로도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면 어느 정도는 세수 증대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도 이번 개정안은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올해 세법 개정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과 시설투자에 법인세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반도체·배터리·백신 3대 핵심 산업의 연구개발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신성장·원천기술(40%)보다 10%포인트 높인다. 시설투자에 대해서도 공제율을 3~4%포인트 올린다. 탄소중립 기술과 바이오도 세액공제 대상에 추가한다. 이런 세제 지원으로 기업들이 1조1600억원의 세금 부담을 덜고, 그 가운데 8300억원가량이 대기업 몫이 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기업에 세금을 깎아주는 세제 개편은 처음이다. 글로벌 공급망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저탄소·친환경 경제 전환에 따라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배터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토착화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내 개발이 필요한 백신 등 차세대 성장동력 강화를 위한 일이다. 기업들이 성과로 답하기 바란다.
반면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새로 추가되는 세금 감면은 많지 않다. 근로장려금(EITC)을 받을 수 있는 소득 상한선을 현행보다 200만원 올려 대상자가 30만명가량 늘어난다. 청년들의 자산 형성 지원을 위해 청년희망적금의 이자소득 면제, 장기펀드 납입금액 40%까지 소득공제를 해주는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그러나 세수 확충 방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세금 체납자들의 가상자산에 대해 강제 징수 규정을 보완한다고 하는데, 그래 봐야 더 거둘 수 있는 세금은 얼마 안 될 것이다. 올해 말로 일몰시한이 도래하는 86개 조세지출 항목 가운데 종료되는 것도 9개에 그친다. 앞으로 고용보험 전국민 대상 적용 확대 등 재정 지원이 필요한 분야가 한두 곳이 아닌데 어떻게 대응하려고 하는 건지 걱정이 앞선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치적 부담이 되는 증세를 피한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짐을 차기 정부에 떠넘긴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