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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무지와 위험 드러낸 윤석열의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안됐다” 주장

등록 2021-08-05 18:34수정 2021-08-05 19:54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이 7월5일 오후 서울대 공대 앞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주도해온 주한규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면담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이 7월5일 오후 서울대 공대 앞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주도해온 주한규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면담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붕괴되지 않아 방사능 유출이 안 됐다”는 주장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윤 전 총장은 지난 4일 <부산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은 세계적으로 원전 최대 밀집지역이어서 원전 확대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원전 안전 관련 입장을 묻는 질문을 받고 “저는 (원전) 안전 문제만은 과학과 전문성에 의해 판단하자는 것”이라며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지진하고 해일이 있어서 피해가 컸지만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고 답했다. 그는 “과학적으로 봤을 때 안전 문제가 있으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근데 과학적으로 봤을 때 안전에 문제가 없다면 과도하게 그럴 필요가 있나”라고 덧붙였다.

윤 전 총장이 이 발언 앞뒤로 과학적 판단을 언급한 것을 감안하면, 후쿠시마 원전이 기술적으로 원전 자체 결함에 의해 폭발하고 방사능이 유출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사실관계의 왜곡일 뿐 아니라 원전 안전 문제에 대해 무지를 드러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먼저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붕괴하지 않았으며 방사능 유출이 없었다는 윤 전 총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지진해일로 비상전력장치가 고장나서 냉각수 공급이 끊기고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리고 격납용기가 파손돼 대량의 방사능이 대기 중으로 퍼져나간 사고다. 원전 주변 뿐 아니라 수도 도쿄까지 대기와 토양을 오염시켰다. 격납용기에서 아래로 흘러나온 핵물질은 지하수에 섞여 계속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또 사용후핵연료 저장고에서 발생한 수소가 폭발해 격납 건물을 부수고 방사능을 대거 유출시켰다.

2017년 6월9일 후쿠시마 제1원전 안에 있는 원자로 건물 외부가 총탄을 맞은 것처럼 곳곳이 패어 있다. 후쿠시마공동취재단
2017년 6월9일 후쿠시마 제1원전 안에 있는 원자로 건물 외부가 총탄을 맞은 것처럼 곳곳이 패어 있다. 후쿠시마공동취재단
그 결과 인근 주민 수만명이 대피해야 했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해 유령마을로 남은 곳이 적지 않다. 어디 그뿐인가. 오염수 방류 문제로 우리나라 등 주변국의 안전에도 큰 부담을 안기고 있다. 원자로 용융, 원전 폭발, 방사능 유출 등 원전 사고의 위험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폭발도 없었고 방사능 유출도 없었다니,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진하고 해일이 있어서 피해가 컸을 뿐,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라는 발언에 담긴 원전 안전에 대한 인식 또한 안이하기 짝이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지진해일에 의한 전력장치 고장이라는 작은 사고가 냉각수 공급 중단으로, 나아가 노심 융해와 폭발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진다는 걸 보여줬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100% 과학적으로 안전한 원전이란 불가능하고, 원전 시스템의 미세한 결함이 언제라도 감당할 수 없는 대재앙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력장치 또한 전체 원전 시스템의 하나라는 점에서, 전력장치와 원전 자체를 구분해 원전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과학적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제1의 책무인 대통령을 꿈꾼다면, 원전 문제에 대해서는 최대한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신중하게 발언하는 게 마땅하다.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윤 전 총장의 발언을 보면, ‘찬핵론자’들과의 단편적 접촉을 통해 편향된 인식을 갖게 된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2017년 6월9일 일본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제1원전에서 도쿄전력 관계자가 2011년 후쿠시마원전 사고 때 수소폭발로 지붕이 날아간 원자로 1호기를 취재진에게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후쿠시마공동취재단
2017년 6월9일 일본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제1원전에서 도쿄전력 관계자가 2011년 후쿠시마원전 사고 때 수소폭발로 지붕이 날아간 원자로 1호기를 취재진에게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후쿠시마공동취재단
윤 전 총장은 대선 출마 선언 이후 불과 한달여 사이 ‘주 120시간 노동’ ‘대구 아니면 코로나 민란’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선택할 수 있어야’ 등 그동안 한국 사회가 어렵사리 합의에 이른 여러 가치와 상식을 부정하는 수준 이하의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1일 1망언’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윤 전 총장이 정말 한국 사회의 미래를 열어갈 지도자가 되길 원한다면 지금 같은 모습을 더 이상 반복해선 안 된다. 이번 원전 발언의 잘못을 진솔하게 인정하고 앞으로는 대선 주자에 걸맞는 언행을 보여주기 바란다.

아울러 윤 전 총장의 원전 발언이 애초 인터넷 기사에 실렸다가 4시간 만에 삭제된 경위 또한 밝혀질 필요가 있다. 혹시 파문이 확산되자 문제의 대목을 빼달라는 윤 전 총장 쪽의 부당한 압력이나 청탁이 있었다면, 이 또한 대선 주자로서 언론을 대하는 바른 자세라 할 수 없다. 만약 스스로도 잘못을 뒤늦게 알아채고 삭제를 요청한 것이라면, 슬그머니 넘어갈 게 아니라 공식적인 해명과 사과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떳떳한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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