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353일 만에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의왕/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정부가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8·15 광복절 가석방 대상에 포함시켜 풀어주기로 9일 결정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으려고 회삿돈 86억원을 횡령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로 건넨 혐의로 지난 1월 파기환송심에서 2년6개월의 징역형이 확정돼 재수감됐다. 국정농단을 심판한 ‘촛불 민심’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가 국정농단의 주요 가담자에게 가석방의 특혜를 베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법 위에 삼성’이 있고, ‘법 위에 돈’이 있음을 보여준 꼴이다. ‘촛불 정부’라는 이름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남게 됐다.
이날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는 이 부회장을 가석방 적격자로 판정했고 박범계 장관이 이를 승인했다. 박 장관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 상황과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에서 이 부회장이 가석방 대상에 포함됐다”며 “사회의 감정, 수용 생활 태도 등 다양한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납득할 만한 설명이 전혀 못 된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외에도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과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가석방 심사 대상에 오른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
이번 가석방 결정에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가석방 심사 기준을 형집행률 60%로 완화해 7월부터 시행했다. 이 부회장은 7월26일 60% 기준을 채웠고, 그 뒤 보름도 안 돼 가석방 심사를 통과한 것이다. 정부가 처음부터 이 부회장을 풀어주기 위해 작정을 하고 ‘맞춤형 가석방’을 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정부의 이 부회장 가석방 추진 움직임에 거듭 반대 의견을 밝혀왔다. 전국 1056개 시민사회·노동단체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은 문재인 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고 촛불의 명령에 명백히 역행하는 행태”라며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을 허가한다면 시민들의 분노와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법 앞의 평등’을 무너뜨리지 말라는 호소이자 경고였다. 지난 대선 때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과 사면권 제한을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은 침묵했다.
이 부회장은 13일 석방된다. 이날 국민은 법 위에 군림하는 경제권력의 발걸음을 보게 될 것이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돈도 실력이야’라고 말했는데, 이 부회장의 석방은 그것이 현실임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촛불을 들었던 손이 부끄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