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경기도 과천 법무부청사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에 대한 법무부·대검찰청 합동 감찰 결과와 검찰 수사 관행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가 17일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검찰 수사 내용이 의도적으로 유출됐다고 의심되면 검찰청 인권보호관이 진상조사와 내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뼈대다. 기존 규정에도 수사 내용은 원칙적으로 언론 등에 공개하지 못하게 돼 있지만, 인권보호관에게 조사 권한을 부여해 실행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검찰의 피의 사실 공표로 피의자의 명예가 훼손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는 등 여러 문제를 낳았다는 점에서 필요한 조처라고 본다. 다만 국민의 알권리가 제약되고 언론의 검찰 감시 기능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법무부 개정안은 공보관이 아닌 검사나 수사관이 수사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출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인권보호관이 진상조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했다. 진상조사 결과 공무상 비밀 누설이나 피의 사실 공표 등 범죄 혐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으면 내사를 벌이게 된다. 수사 정보 유출 관련 진정이 접수됐을 때도 인권보호관이 조사한다. 개정안에는 각 검찰청에 설치된 ‘형사사건 공개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공개하는 수사 정보의 범위를 수사 단계별로 구체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그러나 기자와 검사의 개별 접촉 금지, 구두 브리핑 금지 등 언론의 취재 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내용이 그대로 유지됐다.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2019년 12월 시행됐다. 10여년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과정에서 나온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 파문 이후 검찰이 스스로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만들었으나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새 규정이 제정된 뒤에도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등의 수사 과정에서 수사 진행 상황이 언론에 잇따라 공개되자 법무부가 이번에 규정 개정에 나섰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수사 정보를 흘려 여론몰이에 악용해온 관행은 근절돼야 마땅한 악습이다. 피의자가 법정에 서기도 전에 여론 재판의 희생자가 되는 일이 더는 있어선 안 된다. 하지만 검찰의 비공개 원칙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되고 검찰의 축소·은폐 수사에 대한 감시도 어려워질 수 있다. 권력비리 수사 등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의 경우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등 ‘운용의 묘’를 살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