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친미 정부를 세웠던 미군이 20년 만에 철수하고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면서 벌어진 혼란과 그 후폭풍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비판에 휩싸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철수를 후회하지 않는다며 “미국의 국익이 걸려 있지 않은 전쟁에서 무한정 싸우지 않겠다”는 ‘바이든 독트린’을 선언했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은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것으로, 미국 외교전략의 근본적 방향 전환 신호라는 의미가 있다. 냉전이 끝난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식 질서를 전세계에 무리하게 이식하려다 너무 많은 힘을 소진한 미국이 중동과 유럽 등에서 역할을 축소해 중국 견제에 역량을 집중하려는 현실주의의 요소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새 전략에서 한국을 비롯한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들의 위상은 훨씬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엉뚱하게 세계 6위 군사력과 10위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을 무너진 아프간 정부군에 비교하면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면 한미동맹에 더욱 밀착해야 한다는 아전인수식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 관리 출신의 보수 논객이 “한국도 미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아프간과 같은 운명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을 한 데 이어, 18일 <조선일보>는 ‘아프간 떠나는 미국 보며 한국 처지를 생각한다’는 사설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쿼드 전략 등에 협력하지는 않으면서 북한의 위협만 막아달라는 한국의 애매한 입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도 ‘아프간 사태가 한·미 동맹 중요성 보여줬다’는 사설에서 “정부와 군은 아프간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미 동맹 강화와 강군 유지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이 아프간처럼 되지 않으려면, 한미동맹을 강화해 미국의 중국 견제에 밀착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주장들이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려를 잠재우려 애쓰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8일 방송에 출연해 한국과 일본, 나토 등 동맹과 대만은 아프간과 근본적 차이가 있다면서, 동맹이 침략당하면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전날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가능성을 일축했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하는 미국 국익 중심의 외교전략 변화가 시사하는 의미를 면밀히 주시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중국 견제 역할을 확대하고 비용 분담도 늘려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가 강해질 것이다. 한국은 원칙과 위상에 걸맞는 국제적 역할을 확대하되, 미국의 요구를 무작정 수용해 중국과 군사적 긴장과 대결로 나아가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상당 기간 한미동맹은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한국의 안보를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원칙이자, 아프간 사태가 주는 진정한 ‘교훈’일 것이다. 한미동맹을 잘 관리하면서도 자주국방을 강화해야 하고 전시작전권 환수도 더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