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16일(현지시각) 수도 카불 공항으로 몰려들어 비행기 위에 올라가거나 활주로에서 탑승을 시도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난민들을 한국을 비롯한 미군 해외기지에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자 국내에서도 아프간 난민 수용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주한미군기지의 난민 수용 문제는 한-미 동맹과도 관련된 사안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항공기 지붕 위까지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카불공항의 비극은,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확고한 인도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절박한 메시지다.
2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는 국내에 거주하는 아프간인 30여명이 한국 정부와 국제기구, 기업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도록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1인시위를 이어갔다. 이들의 주장처럼 지금 아프간에서 생명의 위협 등 심각한 정치적 박해 위험에 놓인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기업 등을 도와 자국의 경제 발전과 인권 증진을 위해 일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을 외면하는 건 비인도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벌써부터 ‘난민 혐오’를 부추기는 극단적 주장이 나오고 있는 건 안타깝고 우려스럽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2일 ‘난민을 받지 말아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는데, 청원인은 불경기와 코로나19 장기화로 힘든 상황에서 국민 세금을 들여 난민을 받는 것이 타당한가 묻는 한편 “난민을 받는 순간 우리는 테러에 노출된다”고 주장했다. 난민과 테러를 곧바로 연결시키다니, 나가도 너무 나갔다. 이 청원은 비공개 상태인데도 하루 만에 6000명 넘게 동의를 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2018년 여름 예멘 난민 500여명이 입국했을 때 비슷한 주장을 접한 바 있다. 그들이 한국에서 성폭행을 비롯한 온갖 강력범죄와 테러를 저지를 것이고, 우리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혐오 주장이 가짜뉴스와 뒤섞여 난무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다수가 인도적 체류를 인정받았으나, 범죄 등 사회문제를 일으켰다는 얘기는 없다. 오히려 코로나19로 이주노동자를 구하기 어려운 제주지역 어업에 이들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유엔난민기구(UNHCR)의 ‘한국인의 난민 인식 보고서'를 보면 난민 수용 의견이 33%로, 2018년 예멘 난민 논란 당시 조사보다 9%포인트 올랐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럽다. 우리의 현실에 부합하는 인도주의적 공론을 정부가 이끌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