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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교통사고로 숨진 라이더’ 비난 말고 구조 바꿔야

등록 2021-08-29 18:27수정 2021-08-30 02:38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도로에 전날 사망한 오토바이 배달원을 추모하는 추모 메모와 국화꽃 등이 놓여져 있다. 고인은 전날 신호를 기다리다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연합뉴스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도로에 전날 사망한 오토바이 배달원을 추모하는 추모 메모와 국화꽃 등이 놓여져 있다. 고인은 전날 신호를 기다리다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연합뉴스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도로에서 40대 배달 노동자(라이더)가 화물차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시간에 쫓기며 음식 배달을 하던 고인은 대형 화물차 앞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고, 운전석이 높은 화물차의 운전자가 이를 보지 못한 채 출발하면서 참변이 일어났다. 사고 이후 온라인에서는 고인이 정지선을 위반했다며 악플이 쏟아졌다. 유족들은 고인의 죽음에 악플의 고통까지 더해져 “두번 죽고 있다”며 비통해하고 있다.

라이더들이 교통신호를 위반하거나 난폭 운전을 하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알고리즘의 지시와 시간제한에 맞추려면 신호를 지키면서 배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코로나19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플랫폼 기업들은 주문 콜 배당과 배달 시간, 경로 등이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결정된다며,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라이더들은 알고리즘의 결정 과정에 대한 정보나 발언권이 전혀 없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는 28일 성명에서 이번 사고가 “구조적인 산업재해”라고 지적하고, 배달 도중 울리는 다음 주문 콜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로 위에서 휴대전화를 봐야 하는 등 교통법규를 제대로 지키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더구나 라이더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위탁계약을 맺은 자영업자(플랫폼 노동자)로 구분돼 사고가 나도 제대로 보상을 받기 힘들다.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많은 이들은 생계를 위해 익숙지 않은 배달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하고 있다. 고인도 코로나19로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자 올해 3월부터 배달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고인과 위탁계약을 맺은 배달의민족은 노조 등의 중재로 일단 장례식 비용을 지급하기로 유족과 합의했는데, 산재 보상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함께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알고리즘의 지시에 따르려다 신호를 위반하고 목숨을 잃는 비극은 멈출 수 없다. 지난 18일 라이더유니온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을 발의했다. 기업들이 노동자 보호 의무를 제대로 하도록 인증제를 등록제로 전환하고, 신호를 지켜 배달해도 적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안전 배달료’를 도입하고, 과도한 배달 시간 압박을 제한하기 위해 알고리즘 정보를 공개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국회는 이 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선릉역 라이더의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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