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인 지난해 5월17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나와 자매의 안녕을 바라는 여자들 모임’ 소속 회원들이 쓴 희생자 추모 글들이 붙어 있다.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여성들의 불안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우리 사회가 범죄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여성은 10명 중 2명뿐이라고 한다. 여성가족부가 5일 발표한 ‘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보고서를 보면,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여성 비율은 27.6%였으며 특히 ‘범죄 안전’ 항목에선 ‘매우 또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답한 여성은 21.6%에 그쳤다. 여성 10명 중 8명은 언제든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여성이 안전하지 못한 사회, 여성 스스로에게 자신을 지키라고 말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여성의 안전 체감을 높이는 일은 평등 사회로 나가는 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여성가족부 보고서를 보면, ‘범죄 안전’ 항목에서 안전하다고 느낀 남성 비율은 32.1%로 남녀 간 격차는 10.5%포인트였다고 한다. 여성가족부와 경찰청의 여러 통계를 보면, 남녀 사이의 이런 격차 추세는 2010년대 초반 이래 별로 줄어들지 않고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물론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사회 인식은 바뀌었고, 수사와 처벌 역시 엄격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번 보고서를 보면, 2011년 6848건이던 가정폭력 검거 건수는 2019년 5만277건으로 7배 이상 늘었고 데이트폭력·스토킹 검거 건수(2019년)는 2013년에 비해 각각 36.2%, 86.2% 증가했다. 이는 여성폭력 범죄 자체가 늘어난 점도 있겠으나, 과거엔 드러내길 꺼렸던 여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고 사회적 인식과 경찰 대응 수준이 올라간 데 기인한 측면이 클 것이다. 실제로 경찰청은 여성의 범죄 안전 체감도가 매년 높아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강력범죄 피해자 중엔 여전히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게 현실이다. 대검찰청 자료를 보면,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 범죄에서 여성 피해자 비율은 2000년 71.2%였으나 2017년엔 90%를 넘었다고 한다. 강력 범죄를 당하는 사람 10명 중 9명은 여성인 셈이다. 이래선 여성들이 안전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세계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치안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런 평가와 체감에서 남녀 간 차이가 있다면, 그건 우리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안전’은 젠더 차원에서 접근할 일이 아니며, 시민의 행복 추구권 중 가장 기본적인 부분으로 봐야 한다. 경찰과 정부기관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갖고 함께 대응해야 할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