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국무총리(왼쪽)가 14일 서울 서초구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에서 ‘청년희망 온(ON) 프로젝트’ 관련 간담회를 마친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박수를 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처음으로 이날 공식 대외행사에 참석했다. 공동취재사진
김부겸 국무총리가 14일 삼성그룹을 방문해 삼성과 함께 앞으로 3년 동안 청년 일자리 3만개를 창출한다는 ‘청년희망 온(ON) 프로젝트’ 2탄을 발표했다. 이 행사에는 지난달 가석방 이후 ‘취업 제한’ 법령 위반 논란으로 대외행사를 자제해왔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참석했다. 김 총리가 장관급 2명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대동하고 이 부회장의 공식적인 경영 복귀를 합리화해준 모양새다.
김 총리는 행사에서 삼성의 참여를 “‘국민의 기업, 삼성’다운 과감한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삼성의 사회공헌으로 “국가경쟁력이 강해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정부를 대표해서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다”며 이 부회장에게 별도로 인사까지 했다.
총리가 나서서 기업들의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는 것을 문제삼는 게 아니다. 지금처럼 청년실업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김 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청년들에게 교육 기회와 일자리를 지원하는 ‘청년희망 온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지난 7일 케이티(KT)가 1호 기업으로 참여해 3년간 1만2천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한 것도 이런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정 2인자인 총리가 취업 제한 위반 논란에 휩싸여 있는 재벌 총수의 경영 복귀에 밑자락을 깔아주는 모습을 보인 건 부적절하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억원 이상 횡령·배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법무부 장관의 승인 없이는 해당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에 취업할 수 없게 돼 있다. 이 부회장은 올해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86억여원의 뇌물공여·횡령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확정받았고, 법무부는 한달 뒤 이 부회장에게 5년 간의 취업 제한을 통보한 바 있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무보수·비상임·미등기 임원이어서 취업 상태가 아니다’라는 궤변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활동을 묵인해준 데 이어, 이번엔 총리가 나서 아예 경영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고무한 것이다. 사실상 탈법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스스로 재벌 총수의 취업 제한 관련 법령을 무시하는 것은 지난 20여년 동안 지난하게 이어져온 재벌개혁의 역사를 후퇴시키는 일이다. 과거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재벌 총수가 무소불위의 경영권을 행사하면서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황제 경영’을 바로잡기 위해 총수의 이사 등기를 요구해왔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행보는 오히려 총수들에게 이사 등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장하는 격이다. 이런저런 명분을 앞세워 재벌 총수들에게 이렇게 자꾸 특혜를 주는 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 냉철히 돌아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