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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미국의 ‘반도체 기밀정보’ 요구, 정부 더 적극 대응해야

등록 2021-10-18 18:49수정 2021-10-18 21:47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대외 경제안보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대외 경제안보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에스케이(SK)하이닉스를 포함한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에 민감한 영업기밀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18일 공식 입장을 내놨다. 미국에 우려 사항을 전달했으며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라는 원론적인 내용이다. 미국의 요구가 우리의 경제주권을 침해하는 수준의 심각한 사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소극적인 대응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주재로 첫 ‘대외 경제안보 전략회의’를 열었다. 홍 부총리는 “기업의 자율성(민감 정보 감안), 정부의 지원성(기업 부담 완화), 한-미 간 협력성 등에 바탕을 두고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특히 정부는 기업계와의 소통 협력을 각별히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만 봐서는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고려해 원칙적인 수준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런 대응은 대만 정부가 공개적으로 난색을 표명한 것과 대비된다. 대만에는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 1위인 티에스엠시(TSMC)가 있다. 대만의 쿵밍신 국가발전위원회(NDC) 장관은 지난달 30일 티에스엠시는 고객의 기밀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으며, 고객과 주주의 권리를 위태롭게 하는 관행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이 위원회는 티에스엠시의 주요 주주이며, 쿵밍신 장관은 이 회사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번 요구가 반도체 공급 부족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차원이라고는 하나, 요구 내용을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출 항목에는 제품별 3개 고객 명단과 고객별 매출 비중, 주요 칩의 기술 단계까지 포함돼 있다. 자발적인 제출이라고 하면서도 비협조 기업에는 강제로 수집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경고까지 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무리수는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해 나가는 한편, 미국 내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미국은 현재 반도체 설계 회사인 인텔에 막대한 보조금까지 줘가며 미국 내에 제조시설을 확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기밀정보가 인텔 같은 곳으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기업 기밀정보는 한번 새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한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아무리 중요한 동맹이라 해도, 기업과 국가의 핵심 이익과 관련된 사안에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미국도 양국 간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이번 요구가 미국이 추진 중인 기술동맹 구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고 하루빨리 철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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