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제 20대 대통령선거에 나서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20대 대통령 선거의 대진표가 사실상 확정된 지금, 한국 사회 전체가 요소수 공급 차질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직접적 원인은 중국이 요소수 수출을 통제한 것이지만, 그 배경에는 중국의 오스트레일리아산 석탄 수입 금지와 탄소 감소 정책에 따른 광산 폐쇄 등 국제정치와 기후위기 대응 문제가 얽혀 있다. 게다가 요소수는 일례일 뿐, 기후위기는 국제정치와 맞물려 글로벌 공급망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식량을 1순위 후보로 꼽는다. 자급률이 45%대에 머무는 식량이 공급 차질을 빚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드높지만, 원론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2018년 봄에 닥친 초미세먼지는 눈앞에 ‘지옥도’를 펼쳤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와 해류 흐름의 변화가 일으키는 극단적인 홍수와 가뭄, 화재 같은 재앙에 견줄 바가 못 된다. 하지만 초미세먼지를 잡겠다며 벌였던 호들갑에 비하면, 지금 우리 사회는 더없이 한가해 보인다. 기후위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최근 세계 과학자들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억제하기 위한 탄소중립 시기를 기존의 2050년에서 10년 이상 앞당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한테서도 기후위기에 맞설 비장한 태도나 이렇다 할 공약을 찾아보기 어렵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국가 지도자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퇴임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대표적이다. 메르켈 총리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전략을 앞장서 제시하고, 산업계와 국민을 설득해왔으며, 이를 국가경제 경쟁력에 접목하는 데도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이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유력 대선 후보들의 인식과 태도는 안타깝기만 하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외려 2080년까지로 설계된 탈원전 전략을 폐기하겠다고 나섰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국가 지도자의 역할이 막중한 이유는 무엇보다 기존 체제로부터의 ‘거대한 전환’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인류세’라고 불리는 현 단계의 지구 환경이 몰락을 향해 치닫고 있는 필연적인 국면이다. 인류에 의해 인류 자신뿐 아니라 지구 전체를 존속의 위기로 내몰고 만 것이 기후위기다. 자연환경에 대한 무한 착취, 최대의 이윤 창출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고 체계가 근본적인 원인이고, 그 원인을 해소하지 못하면 탄소중립도 불가능하다. 국가 지도자들이 아니고서 누가 이 전환을 앞에서 이끌 수 있겠는가.
코로나19 위기도 기후위기와 동전의 양면 관계다. 코로나19가 위력을 잃는다 해도 인류를 위협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간헐적 팬데믹 시대’가 올 거라고 예측하는 과학자들이 많다. 인류가 자연환경을 파괴해 바이러스의 숙주와의 거리를 좁혀놨기 때문이다. 팬데믹의 반복을 최소화하기 위한 근본 대책은 기후위기 대책과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는 불과 2년 사이에 가뜩이나 심각하던 부의 편중과 양극화를 빠르게 악화시켰다. 이 질주에 제동을 거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최우선 목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지금 대선 후보들은 이렇다 할 재원 대책도 없이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냐, ‘자영업자 50조원 손실보상’ 지급이냐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기에 바쁘다. 정책 공약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구조를 전환하는 일관된 방향성을 보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기존의 구조를 방치하거나 외려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줄기를 잡는 후보라면 아무리 재정 투입을 늘리겠다고 약속해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헤쳐가야 하는 국가 지도자로 적합하다고 볼 수 없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의 위기도 눈앞의 재앙으로 닥쳐왔지만, 대선 후보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이 문제들 역시 근본 원인은 불평등에 있다. 인구 감소는 성차별과 경제 양극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천문학적인 재정을 들이고도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근본적인 원인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지방 소멸 위기는 지역 인구 감소와 직접 맞닿아 있고, 지역 인구 감소는 갈수록 서울과 수도권으로 돈과 일자리가 집중되는 지역 불평등 구조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기성 체제의 기득권을 해체하고 더 평등한 구조를 세워야 풀릴 문제다.
다음 대통령이 맞게 될 과제들은 이전 대통령들이 경험하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들이지만, 우리가 그동안 구조적 원인을 방치해두는 바람에 악화시킬 대로 악화시킨 오래된 문제들이기도 하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공동체의 생존과 지속성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 대선은 우리 정치사에서 낡은 질서를 허물기 위한 커다란 밑그림을 그리고 이행 전략을 구체화하는 대전환의 일정으로 기록돼야 한다. 후보들의 분발과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으로 향후 5년뿐 아니라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대선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