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신문>의 페트릭 람 편집국장이 29일 아침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홍콩 <AP> 연합뉴스
29일 홍콩에서 언론이 또 사망했다. 홍콩 경찰은 이날 200명의 경찰 병력을 동원해 독립적 온라인 매체 <입장신문>의 전·현직 임원 7명을 체포하고 편집국을 압수수색해 컴퓨터와 취재자료 등을 압수하고 자산을 동결했다. 몇시간 뒤 <입장신문>은 “비영리 단체로서 민주·인권·자유·법치 등 홍콩의 핵심 가치를 수호하는 데 주력했다. 그동안 지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폐간했다.
지난해 중국 당국이 홍콩에서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을 시행한 이후 홍콩의 언론자유와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 지난 6월엔 <핑궈일보>(애플데일리)가 편집국 압수수색과 간부들 체포, 자산 동결 조처를 당한 뒤 폐간됐다. 민주진영 인사들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잇따라 감옥에 갇혔고, ‘민주파’ 후보들의 출마가 사실상 봉쇄된 채 지난 19일 실시된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에선 ‘친중파’가 90석중 89석을 차지했다. 이런 가운데 입장신문이 탄압을 받아 문을 닫은 것이다.
입장신문은 2014년 홍콩 ‘우산혁명’ 이후 “민주·자유·법치와 공의는 우리가 힘써 지켜야 할 홍콩의 핵심 가치이며 (…) 우리는 용감하게 입장을 밝히고 은폐하거나 회피하지 않겠다”는 창간사를 밝히고 출발했다. 그동안 홍콩 민주진영의 목소리를 활발하게 전달해왔고, 2019년 송환법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 때는 시위 상황과 경찰의 폭력적 진압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지난 10월 전세계 유명 인사들의 탈세와 부패 실태를 폭로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판도라 페이퍼스’ 취재·보도에도 참여했다. 지난 6월 핑궈일보가 폐간되자 입장신문은 “홍콩에 ‘문자의 옥’(文字獄)이 왔다”며 모든 칼럼을 내리는 등 당국의 탄압에 대비했지만, 끝내 권력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입장신문>이 29일 폐간을 알리며 SNS에 올린 공고문
홍콩 당국은 이번에 ‘선동출판물 발행 공모죄’를 적용했다. 영국의 식민 지배 시절에 만들어졌다가 그동안 사문화되다시피 한 법을 되살려 언론 탄압에 나선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선동’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홍콩 경찰 책임자는 “정부와 사법기관에 대해 독자의 증오를 유발하거나, 폭력을 선동하거나, 홍콩인들의 불만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정부에 대한 비판 기사는 모두 처벌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존 리 홍콩 정무부총리는 체포된 이들의 상당수가 이미 회사를 떠난 전직 임원이라는 지적에 대해 “누구라도 형법을 위반하면 평생을 쫓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콩 언론계는 공포와 자기 검열 속에서 다음은 어느 매체가 표적이 될지 주시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다양하고 자유롭기로 유명했던 홍콩 언론은 질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외신 기자들의 비자 갱신도 이유 없이 거부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유엔 인권사무소는 29일 “홍콩은 정보·표현·결사의 자유를 존중하고 정당한 법적 절차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며 “우리는 홍콩 시민사회가 자신들을 위해 자유롭게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시민의 공간과 통로가 급속히 닫히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는 투옥된 언론인들을 즉각 석방하는 등 언론자유를 보장할 것을 중국과 홍콩 당국에 촉구한다. 아울러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홍콩의 언론인과 시민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