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30일 대구시당에 도착하며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 논란과 관련해 “저와 제 처, 제 처의 친구들, 심지어 제 누이동생까지 통신 사찰을 했다”며 “불법 선거 개입이고 부정선거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대선전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고 자신과 주변 인물들까지 통신자료 조회 대상이 된 사정을 고려해도,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또 이런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전하는 언론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보다 공수처가 윤 후보와 주변 인물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은 그가 ‘고발 사주’ 사건의 피의자이기 때문이다. 피의자의 통신자료 조회는 수사의 기본이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후보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수사기관은 법원의 영장을 받아 수사 대상자의 통화 내역을 확보한 뒤, 수사 대상자가 통화한 전화번호가 누구의 것인지 이동통신사에 자료를 요청해 확인한다. 얼마든지 자료 요청 남용이라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불법 선거 개입으로 몰아가는 건 얼토당토않다.
윤 후보는 총장 재직 시절 이뤄진 검찰의 통신 조회가 282만여건에 이른다는 사실을 보도한 <한겨레> 기사에 대해 “언론이 민주당 기관지임을 자인하는 물타기 기사”라고 공격했다. 이 기사는 수사기관이 수사 편의만을 위해 통신자료 조회를 남용해왔고 정권이 교체되면 여야가 공수만 바꿔가며 ‘사찰’ 주장을 주고받을 뿐, 근본적인 해법인 법 개정 노력은 게을리한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이를 두고 “민주당 기관지” 운운한 것은 상식 밖의 주장이다. 하락하는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일이 아무리 급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걸 윤 후보는 명심하길 바란다.
수사기관들이 통신자료 조회를 남용하는 문제가 ‘내로남불’식 정치 공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그 최대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갔다. 윤 후보는 “검찰에서 좀 한 것 갖고 ‘내로남불’이라고 그러는데, 1년에 형사사건이 100만건이 넘는다”며 “야당 정치인, 언론인에 대한 광범위한 통신 사찰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자신과 주변의 정보인권은 소중하지만 통신자료 조회를 당한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는 수백만 국민의 정보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수사기관이 통신자료 조회를 남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고 있는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은 몇차례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수사기관들의 버티기, 정치권의 정략적 이해 때문에 굳건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통신자료 조회의 문제점을 인식한다면 법 개정에 신속히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