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4일 오후(현지시각)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시이에스(CES)가 열리고 있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프레스 컨퍼런스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연합뉴스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한 개정 공정거래법이 지난해 말부터 시행됐으나, 현대차그룹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지난 5일 현대글로비스 지분 일부를 우호세력에게 매각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 명예회장 부자의 이런 행태는 2014년 일감 몰아주기 근절을 위한 ‘사익 편취’ 조항이 처음 도입되자 이듬해 지분 일부를 매각해 규제를 피한 데 이어 두번째다. 정부의 규제를 비웃기라도 하듯 두번씩이나 법의 구멍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현대글로비스는 정 명예회장 부자가 지분 10%를 약 6113억원에 미국계 사모펀드인 칼라일에 매각했다고 지난 5일 공시했다. 매각 대상은 정 명예회장 지분 전량(6.71%)과 정 회장의 지분 일부(3.29%)다. 이로써 정 명예회장 부자가 보유한 지분은 29.99998%에서 19.99998%로 낮아졌다. 기존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가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 되는 상장사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했는데, 개정 법이 발효된 지난해 12월30일부터는 총수 일가 지분율 20% 이상으로 강화됐다. 현대글로비스는 법 개정에 따라 규제 대상에 포함됐으나, 이번 지분 매각으로 또다시 규제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익 편취 규제는 재벌 총수 일가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편법적인 소유·경영권 승계를 막고, 기업들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자 2014년 2월 도입됐다. 그러나 공정위 실태 조사 결과, 재벌들은 총수 일가의 지분율을 30% 미만으로 줄이는 편법으로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 부당한 내부거래를 지속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2020년 전체 매출액 중에서 국내외 계열사를 통해 올린 매출의 비중이 69.7%에 이른다. 공정위는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20~30% 사이인 상장사를 ‘사각지대’로 규정해 감시를 하긴 했으나 법망이 미치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정부 여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공정경제 3법’ 중 하나에 포함시켜 2020년 말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시켰다. 그런데 현대차그룹 대주주들이 또다시 지분 매각 방식을 동원해 이런 법 개정 노력을 헛되게 만든 것이다.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 대주주의 일거수일투족은 다른 재벌들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현대차그룹을 따라하는 곳들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공정위는 이런 규제 회피 기업을 엄정하게 감시해 법을 무시하는 재벌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