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방에서 친러 세력이 세운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지역의 분리독립을 선포하고 ‘평화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워 러시아군 투입을 명령했다.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를 침해한 국제법 위반 행위이다.
러시아가 분리독립을 선포한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간스크는 2014년 이후 이미 친러시아 반군이 사실상 장악해온 지역이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이 지역의 분리독립을 선포하고 파병을 지시한 것은 우크라이나 영토에 공개적으로 군대를 파견할 길을 연 중대한 분수령이다. 러시아가 두 지역을 넘어 우크라이나의 다른 지역에 대한 전면적 침공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푸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해 “진정한 국가 전통이 없다” “미국의 식민지”라고 주장하며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침공 명분을 만들려는 의도인 동시에, 우크라이나의 복잡한 역사를 러시아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강대국의 논리다. 러시아는 19만 병력으로 우크라이나를 포위한 채 미국과 유럽을 향해 우크라이나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받아들이지 말라며 ‘나토의 동진 금지’ 등을 요구해왔다. 러시아는 미국이 독일 통일 당시 ‘나토를 동쪽으로 확대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한다. 물론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영토를 보전하기로 한 약속을 지금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 결국 푸틴 대통령은 동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고 러시아를 미국과 동등한 강대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약소국인 우크라이나를 희생양 삼아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는 셈이다.
전쟁의 불길과 무고한 시민 희생을 막을 외교의 길은 좁아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 24일 미-러 외교장관이 회담할 예정이고 바이든과 푸틴의 정상회담 가능성도 아직은 제기된다. 러시아는 더이상의 긴장 고조 행위를 멈추고, 외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하기를 촉구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약소국을 전쟁터로 삼는 강대국 간 지정학적 대결의 시대가 왔음을 경고하고 있다. 정부는 우선 교민 안전과 에너지 공급망 등 경제적 여파에 철저히 대비할 때다. 또한 한반도가 다시는 강대국의 충돌에 희생되지 않도록 지혜로운 외교안보 전략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