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2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하나은행 관련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자료.
하나은행장 재직 시절 신입사원 공개 채용 과정에서 특정 지원자를 합격시키라고 지시해 업무 방해 혐의로 기소된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에게 1심 법원(서울 서부지방법원)이 지난 11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이 시작된 지 4년 만에 나온 판결인데 납득하기 어렵다.
함 부회장은 은행장으로 있던 2015년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로부터 그의 아들이 하나은행 공채에 지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인사부에 전달하면서 서류전형 이후 합숙면접에서 통과하지 못할 경우 합격시키라는 지시를 했다는 혐의로 2018년 기소됐다. 검찰은 진술 증거와 함께 메신저 등 물적 증거도 제시했다. 검찰은 함 부회장에게 징역 3년에 벌금 500만원을 구형했다. 그만큼 무거운 죄로 본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함 부회장이 추천 의사를 인사부에 전달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합격권에 들지 못한 지원자가 합격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합격권에 들 수 있는 지원자는 ‘부당한 청탁’이 있어도 채용 비리가 아니라는 말인데, 국민 일반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판결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법원은 채용 비리와 관련해 유독 힘센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증거’를 매우 까다롭게 판단하는 모습을 보여 왔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함 부회장은 지난달 하나금융그룹 차기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됐고 2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장에 취임한다. 함 부회장의 지시를 받아 이행한 전직 인사부장 등 4명은 2020년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받고 항소했으나 지난달 2심에서도 같은 형을 선고받았다. 법의 잣대가 지위고하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앞서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도 지난해 11월 채용 비리와 관련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조 회장은 신한은행장 재직 시절인 2015~2016년 임원·지인 등의 자녀를 부정 채용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선 유죄를 선고를 받았으나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당시 재판부도 검찰이 부정 합격자로 판단한 53명에 대해 “대부분 청탁 대상이거나 은행 임직원과 연고 관계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상위권대 출신에 어학 점수, 자격증 등을 갖추고 있어 ‘부정 통과자’라고 일률적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강원랜드에 자신의 의원실 인턴비서들의 채용을 청탁한 혐의로 기소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달 대법원에서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얼마 되지 않는 좋은 일자리를 놓고 피눈물 나는 경쟁을 벌이는 청년들에게 공정한 채용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채용 비리를 단호하게 처벌해서 감히 다시는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도 판결은 정반대로 가고 있으니, 이러고도 법원이 공정과 정의를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