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용산에 있는 국방부 청사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졸속 이전이 불러올 부작용도 우려되지만, 수많은 비판에 귀를 닫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불통’의 모습을 보면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국민들과의 소통 강화”를 위해 집무실을 이전한다는 말은 겉치레일 뿐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기자회견에서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바꾸는 과정이 급하게 이뤄진 거 아니냐는 논란이 많다. 풍수지리라든가 무속 논란도 같이 불거지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윤 당선자는 이날 오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고, 국방부는 합동참모본부 청사로 이전하는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선거운동 기간 중 내건 광화문 이전 공약은 “시민들의 불편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파악되었다”면서 백지화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지 10일 만에 공약을 파기하면서도 “세밀하게 검토하지 않았다”고 했을 뿐, 사과 한마디 없었다. 용산 이전에 대해서는 “국방부와 합참 구역은 국가 안보 지휘 시설 등이 구비되어 있어 청와대를 시민들께 완벽하게 돌려드릴 수 있고 경호 조치에 수반되는 시민들의 불편도 거의 없다”고 했다.
윤 당선자는 기자회견에서 용산 이전 이유를 설명했지만 국민들의 의문과 불안은 오히려 더 커졌다. 무엇보다 대통령 당선자가 코로나19 대응과 민생 회복이라는 중차대한 현안들을 제쳐두고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집무실 이전을 서둘러 해야 하는지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윤 당선자는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하나 청와대를 돌려받아 등산을 하는 것을 지금 시급한 일로 여기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윤 당선자가 이전 비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믿기 어렵다. 윤 당선자는 전체 이전 비용이 496억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청와대와 경호실 이사 비용과 리모델링 비용, 국방부 청사 이사 비용 등이 포함됐을 뿐이다. 국방부 방호시설과 전산망 이전 비용은 빠져 있고, 수십년 동안 거액을 들여 구축해온 청와대 안보 인프라 폐기에 따른 매몰 비용 등도 제외됐다. 합동참모본부 청사를 남태령 지역으로 옮기는 비용도 제대로 계산하지 않았다. 청와대, 국방부, 합참의 이전은 단순한 이사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위기 관리를 위한 콘트롤 타워를 새로 짜는 국가 대계다. 이런 시설들을 제대로 구축하려면 496억원으로 턱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1조원 이상 소요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가 임박한 것으로 예상되는 민감한 시기에 국방부와 합참 등이 연쇄 이동을 하면서 초래할 안보 위기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합참의장을 지낸 11명의 예비역 고위 장성과 전직 국방부 장관들도 용산 이전을 반대하는 입장문을 전달했다. 이들은 “청와대 집무실의 국방부 청사 이전과 국방부·합참의 연쇄 이동은 정권 이양기에 안보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며 “특히 북한이 잇따라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 준비 동향을 보이는 등 안보 취약기에 군의 신속한 대응에서 대혼란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방장관·합참의장이 같은 구역 내 ‘공존’하는 것은 전략·전술적으로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전쟁 지휘부가 한 구역 내 위치할 경우 유사시 적의 우선 공격 대상이 되기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 등 어느 나라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 강력히 반대하면서 윤 당선자가 거듭 강조해온 ‘협치’도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의 뜻은 깡그리 무시한 당선인의 횡포”, “대통령 새 집 꾸미자고 시민들 재산권을 제물로 삼는 꼴”, “안보 공백이 없다는 윤 당선인의 주장은 한마디로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졸속과 날림의 집무실 이전 계획”을 즉각 철회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결사의 자세로 안보와 시민의 재산권을 지키겠다고도 했다.
윤석열 당선자는 5월10일 대통령 임기 첫날을 청와대를 떠나 새 집무실에서 시작하겠다는 아집을 버리고 충분히 시간을 갖고 국민 여론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면밀한 검토를 거쳐 집무실 이전 계획을 다시 짜기를 바란다. 여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런 의견이 광범위하게 나오고 있다는 걸 윤 당선자는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