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주재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미국대사(왼쪽부터), 조현 한국대사, 이시카네 기미히로 일본대사가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뒤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유엔본부/AP 연합뉴스
북한이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시험발사한 데 대응해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강력한 추가 제재안을 마련하겠다며 25일(현지시각) 안보리 회의를 소집했으나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끝났다.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추가 제재에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안보리는 북한의 ‘화성-15형’ 아이시비엠 발사에 대해 대북 원유 공급 상한을 축소하는 제재를 만장일치로 결의하면서 이른바 ‘유류 트리거(방아쇠)’ 조항을 마련했다. 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하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연간 각각 400만배럴, 50만배럴로 설정된 대북 원유 및 정제유 공급량 상한선을 추가로 줄이는 제재안을 취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지금이 그때”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회의에서 중국은 긴장 고조를 이유로 반대하며, 대화 조기 재개를 위한 ‘매력적 제안’을 미국 쪽에 요구했다. 러시아도 북한 주민 위협을 이유로 반대했다. 안보리 결정은 실질적 강제력을 지닌 ‘결의’와 ‘의장 성명’, ‘언론 성명’ 등 3가지가 있는데, 가장 약한 언론 성명도 중·러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2017년 북한의 아이시비엠 시험발사 때에는 안보리가 4개의 대북 제재를 만장일치로 잇따라 채택했으나, 이번에는 그때보다 성능이 더 높아진 아이시비엠 발사인데도 아무런 대응도 못 하는 셈이다. 지난 5년간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된데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 대 중·러의 대립 구도가 명확한 ‘신냉전’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25일 안보리 회의에서 중국이 비난한 대상도 아이시비엠을 발사한 북한이 아니라, “연합군사훈련 중단 약속을 지키지 않는 등 북한 안보를 위협했다”는 미국이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우려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이시비엠 발사를 계속 감행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 신냉전 구도에선 남북한 관계도 지금보다 더 긴장 상태로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럴수록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상황을 미국과 알력을 벌이는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고 평화적 해법을 찾는 데 책임을 다해야 한다. 미국도 대북 정책에 대한 장기적 해법 아래 긴장 완화를 최우선에 두는 전략을 끈기 있게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