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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젤렌스키의 호소, ‘텅 빈 국회’가 보여준 부끄러운 외교

등록 2022-04-12 18:16수정 2022-04-13 02:42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 오후 우리 국회에서 한 화상 연설을 듣는 의원들의 모습은 국제질서 변화에 무관심한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의 무기 지원 요청은 분명 고민스러운 요구지만, 정치인들의 무성의한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해외 의회를 상대로 한 연설은 이번이 24번째였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번째였다. 하지만 이번처럼 청중석이 텅 빈 것은 처음이었다. 의원 300명 중 약 60명만 참석해 좌석 300석이 대부분 비어 썰렁했다. 여야 지도부가 참석했지만 박병석 국회의장 등 국회의장단은 보이지 않았다. 장소도 국회 본회의장이 아닌 국회도서관 대강당이었다. 약 17분의 연설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보는 의원들도 눈에 띄었다. 그동안 23개국의 화상 연설 때마다 어김없이 터져 나온 기립박수도 없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국은 1950년 전쟁을 겪었고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이겨냈다”며 6·25 전쟁을 겪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향해 공감과 연대를 호소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러시아의 탱크, 군함,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군사 장비들이 대한민국에 있다. 러시아에 맞설 수 있게 도와달라”며 한국의 무기 지원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하고 도시는 파괴되고, 동남부 지역에 대한 러시아군의 대공세가 임박한 우크라이나의 절박한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요청이지만 한국에는 난제를 던진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하고 핵실험 재개 신호까지 보이면서 안보 정세가 복잡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무기 지원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한국의 지원이 동북아 정세의 대립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타당하다. 또한 근본적으로 무기 지원이 조속한 전쟁 종식과 평화보다 대립의 격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도 한국 정부의 ‘살상무기 지원 불가 방침’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상황은 국제질서의 중요한 변곡점이고 한국에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무기 지원 문제와 별개로, 한국 정치인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호소를 경청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했다. ‘세계 10위 선진국’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강화’를 강조하던 한국 정치인들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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