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첫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무조정실장에 낙점했던 윤종원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장이 28일 “여기서 그치는 게 순리”라며 고사 의사를 밝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여당이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국무조정실장은 국무총리를 도와 행정부를 통할하고 정책을 조율하는 구실을 한다. 사실상 총리의 ‘보좌역’인데도 한 총리가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반대에 밀려 이를 관철시키지 못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책임총리제’가 첫발부터 삐걱이는 모습이다.
권 원내대표는 윤 행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았던 ‘전력’을 문제삼았다. 윤 행장이 국민의힘이 비판해온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정책 등 경제정책을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윤 행장은 보수·진보 정부를 아우르며 중용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지냈고, 2018년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선 1년여간 경제수석을 맡았다. 행정 관료인 윤 행장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도’했다는 것도 과도한 해석이다. 한 총리는 지난 25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그분은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책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불려 온 사람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책이 그분이 오면서부터 포용적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며 적극 감쌌지만 여당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권 원내대표 등은 윤 행장의 ‘문재인 정부 이력’을 문제삼지만, 앞서 한덕수 총리 인준 과정에선 그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력을 ‘협치 카드’라고 칭송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정책 빼고는 다 된다’는 기조를 공식화한 것인가. 직전 정부와의 차별화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인재 풀은 물론 야당과의 정책 공조 여지를 축소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책임총리제가 삐걱이면 야당과의 ‘협치’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보좌진조차 마음대로 꾸리지 못하는 총리”(장태수 정의당 선대위 대변인)를 과연 야당이 파트너로 인정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총리에게 내각 운영의 충분한 권한을 주는 책임총리제를 강조해왔다. 이번 윤 행장 낙마가 당정 관계의 잘못된 선례로 남게 될까 우려스럽다. 윤석열 정부가 아닌 ‘윤핵관 정부’라는 오명은 피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