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기관장들을 압박해 사표를 받아냈다는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5일 밤 구속영장이 기각돼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나와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에서 산하기관장들을 압박해 사표를 받아냈다는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백운규 전 산업통상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15일 기각됐다. 법원은 대체적인 혐의 소명은 이뤄졌으나 일부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고, 도망·증거인멸 우려 등 구속 사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수사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인신구속을 앞세운 무리한 수사 방식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3년이나 묵히다가 대선 직후인 3월25일 산업부 압수수색에 나서 ‘정권 코드 맞추기’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이었던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까지 수사를 확대하며 ‘전 정권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여성가족부가 민주당 공약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최근 모든 부처에 공문을 보내 유사한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수사 확대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경찰도 대선 당시 불거졌던 이재명 의원 부인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과 관련해 최근 129곳을 압수수색하는가 하면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16일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정권 초기에 이처럼 전 정권이나 낙선한 대선 후보를 겨냥한 수사에 속도를 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고 최측근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뒤 검찰 요직에 ‘윤석열 라인’ 검사들이 포진한 ‘정권-검찰 직할체제’에서 이런 수사 상황은 더욱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야권에서 ‘정치보복’이라는 반발이 나오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16일 “중대한 범죄 수사를 보복이라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국민께서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물론 범죄 혐의가 있는데 수사를 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사가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을 잃어서도 안 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 수사는 전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 장모가 연루된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 수사도 답보상태다. 야권을 겨냥한 수사가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지 않으려면 ‘살아있는 권력’인 현 정권과 관련된 수사 또한 엄정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