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19일 오전 서울 강서구 마곡동 엘지(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해 차세대 배터리 기술 등을 전시한 ‘지속가능 갤러리'를 관람한 뒤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전략에 한국의 동참을 압박하는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반도체 원천기술과 일본의 소재·장비, 한국·대만의 제조 능력을 결합한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인 ‘칩4 동맹’을 제안하고 새달까지 참여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19일 방한해 반도체·배터리를 언급하며 ‘프렌드쇼어링’(우방국 간 공급망 구축)을 하자고 밝혔다. 여기에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깊게 개입돼 있다. 최대 무역상대국인 중국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데 윤석열 정부는 정권 출범 두달이 넘도록 이렇다 할 대중국 정책을 내놓지 않아 우려스럽다.
옐런 장관은 방한 첫 일정으로 전기차 배터리와 전지 소재 등을 개발하는 엘지화학을 방문했다. 그는 연설에서 “프렌드쇼어링은 경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믿을 만한 무역 파트너 간 관계를 심화하고 공급망을 다양화하는 것”이라며 “동맹국·파트너와 함께하는 것이 경제 회복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중국 같은 나라들이 핵심 원자재·기술·상품 분야에서 시장 지위를 이용해 우리 경제를 어지럽히고 지정학적 지렛대로 사용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 쪽의 요구에 적극 화답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옐런 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경제안보 분야에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강국이자 동맹국인 미국의 요구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청사진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산업계에서는 불안한 표정이 역력하다. 칩4 동맹의 경우 우리의 최대 반도체 수출 시장이자 생산기지인 중국을 배제하는 성격이 짙어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은 좋든 싫든 상당히 큰 시장인 만큼 포기하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개방형 통상국가인 우리나라가 국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선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원칙을 갖고 실리외교를 펴야 한다. 미·중이 보호무역주의로 빠져드는 걸, 우리와 이해관계가 유사한 나라들과 연대해 최대한 막되, 불가피할 경우에도 중국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한·중 수교 30돌을 맞는 다음달까지는 대중국 정책을 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