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경찰국 입구에서 첫 업무일을 맞은 직원들 격려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부 법령에 대한 해석 권한을 지닌 법제처가 ‘국가경찰위원회는 기속력 있는 합의제 의결기관’이라는 판단을 해놓고도, 국회에는 그 부분을 쏙 뺀 채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3일 <한겨레> 취재 결과 드러났다. 경찰위원회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장관 자문기구에 불과하다며 경찰국 신설 등 경찰제도 개편을 밀어붙인 행정안전부의 주장이 억지라는 걸 감추기 위해 법제처가 사실상 국회를 기망한 거나 다름없다. 국회 차원의 엄중한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
행안부는 그동안 치안정책의 심의·의결 기구인 경찰위원회를 ‘행안부 소속 자문위원회’로 깎아내리고,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법제처의 검토 자료를 ‘유권해석’이라며 근거로 들곤 했다. 법제처도 경찰위원회의 성격을 행안부 장관의 자문위원회로 보고 있으므로 경찰위원회의 결정을 꼭 따를 필요가 없다는 취지였다. 행안부는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주요 치안정책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승인권을 명시한 ‘소속 청장 지휘에 관한 규칙’(행안부령) 제정을 밀어붙였다. 1991년 경찰법 제정 이래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근간이 돼온 의사결정 구조를 부정하고, 경찰위원회의 심의·의결권을 사실상 행안부 장관에게 복속시킨 것이다.
그러나 법제처가 2019년 작성한 검토 자료에는 “(경찰위원회는) 기속력이 있는 합의제 의결기관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경찰법에)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위원회의 심의·의결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기속력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도 법제처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자료 제출 요구를 받고 ‘기속력이 있다’는 내용을 뺀 ‘편집본’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가경찰위가 자문기구에 불과하다는 행안부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들 위주로 편집됐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징계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의 대리인이자 처가 의혹 사건의 변호인이었다. 윤 대통령의 고교·대학 후배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함께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힌다. 법제처는 경찰제도 개편 관련 법령의 입법예고 기간을 40일에서 4일로 줄여줘 행안부의 ‘속도전’을 돕기도 했다. 대통령의 두 측근이 손발을 맞추며 ‘경찰 장악’을 꼼수로 밀어붙인 모양새다. 국회가 이를 바로잡고 경찰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당위성도 더욱 뚜렷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