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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조세희는 영면했지만 ‘난쏘공’의 외침은 계속된다

등록 2022-12-26 18:12수정 2022-12-26 18:44

조세희 작가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영안실에 26일 오후 조문객들이 방문해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조세희 작가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영안실에 26일 오후 조문객들이 방문해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난쏘공)을 쓴 조세희 선생이 25일, 80년의 생을 마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 조 선생의 영면을 비는 글이 쉼 없이 올라오고 있다. 그가 남긴 삼엄한 문학작품을 읽고 감응한 이가 그만큼 많아서이기도 하거니와, 1978년 책으로 묶여 나온 <난쏘공> 연작의 서사와 문제의식이 지난 44년 내내 우리 현실에서 고스란했고 근래에 그 현실성이 어느 때보다 엄중하게 다가오는 데 따른 사회적 현상일 터이다.

지난 24일 확정된 내년도 예산 가운데 장애인권리예산은 장애인단체들이 요구한 증액 규모의 0.8%만 반영됐다. 장애인들이 올 한해 출근길 지하철에서 비난을 참으며 외쳤던 목소리가 정부와 국회에서 작은 메아리로도 울리지 않은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17조5천억원으로 올해보다 5조원이나 줄었다. <난쏘공>의 등장인물이 무허가 주택에서 내쫓기는 장애인 가족인 건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소설 속 그때나 지금 현실에서나 사회적 약자들의 보편적 모습이다.

작품 속 딸 영희는 졸음과 싸우며 철야노동을 하고, 벽돌공장 굴뚝 위로 올라간 아버지는 스스로 추락사한다. 지금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법정 노동시간을 다시 늘리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고,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 1년도 안 돼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 화물 노동자들의 파업을 북핵에 빗대가며 개인사업자의 불법 운송 거부로 몰아 강경 진압한 뒤 안전운임제 일몰 조항 연장을 거부하고 있다.

조 선생은 생전 “<난쏘공>을 쓸 땐 근로기준법만 지키면 낙원이 올 것 같았는데, 30년 뒤 비정규직 문제가 나올지 누가 생각했겠나”라고 토로한 바 있다. 아직도 하청이나 특수고용 노동자의 파업을 ‘불법’으로 만들어 손해배상의 벼랑으로 내모는 노조법 2·3조는 서슬 퍼렇다. 이를 개정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 입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이어온 노동자들은 26일 더불어민주당 당사 점거에 들어갔으나, 여야는 이날도 국민의힘의 완고한 반대로 고성만 주고받았다.

조 선생은 <난쏘공> 발간 30주년이었던 2008년 <한겨레>에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거야”라고 밝혔다. 그는 저 역설적인 걱정을 내려놓지 못한 채 눈을 감았고, <난쏘공>은 우리 사회가 완성해야 하는 미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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