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을 새 총리 후보자에 지명함으로써 한국 역사상 첫 여성 총리의 탄생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 의원이 총리로 임명되기까지는 국회 인준 절차가 남았다. 하지만 야당에서도 한 지명자한테 노골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청문회 과정에서 중대한 결격사유가 돌출하지 않는 한 국회인준은 무난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한 지명자는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경력과 의정활동, 여성부와 환경부 장관 시절 보여준 행정능력 등을 볼 때 총리직을 수행할 만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다고 판단된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가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번 총리 지명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여성계가 환영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다.
한 지명자에게 눈길이 쏠리는 것은 원만한 성품과 부드러운 지도력을 통해 기존의 총리와는 다른 화합과 민생의 국정을 펼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아울러 그가 ‘부드러우면서도 원칙을 고수하는’ 개혁 총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지만 원칙을 상실하면 부드러움은 유약하고 우유부단함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노 대통령이 전임 총리 때 도입했던 ‘분권형 책임총리제’가 그대로 유지될지는 현재로서 속단하기 어렵다. 어떤 형태가 되든 새 총리는 대통령의 잘못된 점은 과감하게 직언하는 등 당당하게 처신할 것을 주문한다. 대통령과 총리의 진정한 역할분담은 서로의 독선과 아집을 허심탄회하게 지적할 수 있을 때 취지에 부합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우선 한 지명자는 눈앞에 다가온 지방선거의 엄정한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선관위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자치단체장 후보에 대한 지방공무원들의 줄서기 등 혼탁과열 조짐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한 지명자의 당적 이탈 요구는 다분히 정치공세의 인상이 짙다. 하지만 불필요한 정치적 시비를 차단하고 중립적이고 공정한 선거관리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차원에서, 한 지명자가 당적을 포기한 뒤 선거 뒤 다시 회복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 지명자는 또 최근 들어 문란해진 공직자들의 기강을 바로잡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어느 정권이든 임기말이 되면 공직사회의 분위기가 흐트러지기 쉬운 법이다. 윤리기준을 위반한 공직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호히 처벌하는 엄중함이 따라야 한다.
한 지명자가 직면한 최대 난제는 실추된 참여정부의 국민적 신망을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참여정부가 각종 개혁정책을 시행했음에도 광범위한 민심이반이 표출되고 있는 것은, 피부에 직접 와닿는 내용이 빈약했거나 역효과가 나타난 데 그 원인이 있다. 여성과 직결된 저출산 문제만 해도 대책이 말로만 요란했을 뿐 현실성 있는 후속조처가 따르지 않았다. 정부와 청와대, 열린우리당 사이의 정책조율 난조도 정책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켰다. 총리 지명자는 부실한 각종 정책들을 냉정하게 짚어보는 데서 민심회복을 위한 첫발을 내디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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