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집중호우가 한 고비 넘겼으니 책임론 공방이 나올 때도 됐다. 그러나 이번엔 결론이 쉬울 듯했다. 300~400㎜ 물폭탄도 문제지만, 부실공사가 원인이었던 서울 양평동이나 고양 행주외동 등 도시지역 침수피해, 마구잡이 도로공사로 인한 강원도 지역의 통행두절 사태, 하천정비 불량과 막개발이 크게 기여한 강원 산간지역과 하천 주변의 피해 등 원인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논의가 흘러가는 것을 두고볼 건교부 수자원공사 등 건설족이 아니다. 이들은 갑자기 환경운동단체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이들의 반대로 다목적 댐을 건설하지 못해 수재가 커졌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이 편승하고, 호시탐탐 경기부양을 노리던 열린우리당의 관료 출신 당직자들이 호응했다. 이들이 꼽는 대표적인 환경단체의 잘못은 영월댐과 한탄강댐 건설 반대다.
과연 그럴까. 이번에 가장 큰 수재를 당한 지역은 동강 상류의 정선과 평창이다. 동강댐이 건설됐다면 이 지역은 아예 수장됐을 것이다. 동강댐의 홍수조절 기능을 꼽기도 하지만, 남한강 유역의 수계가 워낙 넓기 때문에 동강댐의 수위 조절 능력은 20cm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영월의 침수 위험도 꼽지만, 영월은 배수시설 정비와 제방 보강으로 안전할 수 있었다. 게다가 동강지역은 단층대와 석회암 지대로 지반이 허약하다. 동감댐이 붕괴된다면 그 피해가 어디에 이르렀을까. 한탄강댐도 마찬가지다. 한탄강-임진강 하류에 있는 상습 침수지역인 문산은 올해 전혀 피해를 받지 않았다. 제방을 높이고 배수시설을 확장하는 것만으로 수재에서 벗어났다. 건설족이 기억해야 할 것은 1996년과 99년 연천댐의 붕괴로 말미암은 한탄강 수역 최악의 물난리였다.
댐건설을 마냥 반대하는 건 아니다. 가뭄에 대비하고, 홍수조절 기능도 하며,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는, 그런 댐의 필요성을 누가 부정할까. 문제는 신뢰성을 잃은 건설족의 처신이다. 터무니없는 물 수급 통계를 들이대며 협박하고, 물난리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며, 댐의 기대이익을 과대 계상하고 피해는 형편없이 낮춰잡는 따위의 행태가 그것이다. 수재로 온국민의 마음이 뒤숭숭하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있는 관리들이 책임 회피는 물론 밥그릇 챙기기 궁리나 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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