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총체적인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가 나왔다. 검찰 발표는, 론스타의 치밀한 각본과 로비에 따라 금융당국 고위 관료와 외환은행 경영진이 불법·헐값 매각을 주도했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매각 결정과 가격 산정, 인수자격 승인 과정 등에서 총체적인 불법과 로비가 있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발표대로라면 외환은행 매각은 그 자체가 법률적으로 원천무효인 셈이다.
이번 사건은 무려 9개월 동안 대검 중수부가 총동원돼 벌인 초대형 수사였다. 그러나 결과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여러 면에서 미흡하다. 검찰은 불법·헐값 매각의 주범으로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 국장과 이강원 외환은행장을 지목했다. 당시 정책 결정권을 행사했던 이른바 ‘윗선’들은 대부분 무혐의 처리됐다. 재경부 국장이 아무리 힘센 자리라지만 국책은행 매각을 혼자 전결·처리했다는 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핵심 피의자들이 소환을 거부해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론스타의 금품 로비 등 직접적인 불법 행위도 검찰은 밝혀내지 못했다. 불법을 저지른 배후나 동기를 설득력 있게 소명하지 못한 셈이다.
검찰 발표로 외환은행 매각이 원천무효라는 논란은 더욱 커질 것이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까진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만큼, 이른바 론스타의 ‘먹튀’를 미리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금융감독위원회가 대주주 자격을 직권으로 취소하거나 검찰이 외환은행 주식을 압수 보전하는 등의 방안이 거론된다. 현행 규정과 제도로 가능한 일이라면 검토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여론을 좇아 무리한 행정권을 발동하거나 법 적용에 나서선 안 될 일이다. 억울한 희생양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불법 혐의는 결국 법정에서 가려야 할 일이다.
외환은행 매각 과정은 사법적 잣대로만 볼 일이 아니다. 당시로선 최선의 정책적 판단이었다는 금융당국의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밀실에서 몇몇 정책 책임자들이 매각을 밀어붙였고, 이를 외자유치로 포장해 투기자본에 안방을 내줬으며, 이들의 투기적 행태를 관리할 법망은 허술했다. 우리 금융정책의 부실상이 검찰 수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설령 불법이 없었다고 해도 이런 책임까지 면책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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