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확히 한 해 전, 한 대학 체육학과의 폭력적인 새내기 길들이기가 폭로된 바 있다. 다른 학교의 비슷한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고 비난 여론도 높아졌다. 특히 문제가 된 대학의 체육대학장은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난 지금도 폭력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현장에 있던 체육대학장은 “떳떳하다”고 자신있게 말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교수가 학생들의 폭력을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다.
체육대학에서 폭력을 통한 길들이기는 역사가 깊다고 한다. 예절교육 또는 전통을 내세우면서 계속 이어졌고 체육인들은 대체로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체육인 사이에서 이렇게 폭력이 이어진 건 그들이 유독 어리석거나 비겁해서가 아니다. 어떤 집단도 비슷한 상황에서는 마찬가지로 행동하게 만드는 게 폭력이다. 폭력은 당하는 사람을 길들여서 똑같이 폭력을 휘두르게 하는 힘이 있다. 폭력을 몰아내려면 이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지독한 독재와 권위주의를 거쳐 온 우리 사회는 이 악순환 고리를 끊으려 애써 왔고, 폭력의 상징과도 같은 군대에서도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요즘은 그 어떤 군인도 폭력 행위를 공개적으로 옹호하지 못한다. 하물며 체육대학에서 폭력을 몰아낼 책임이 있는 교수가 폭력을 옹호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이런 태도는 체육인들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하다고 말하는 격이고, 결과적으로 체육인 전체를 욕보이는 꼴이다. 체육대학에서 아직 폭력이 난무한다는 건, 학생들의 인권 문제 이전에 체육인들 자신의 수치임을 깨달아야 한다.
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는 신체단련에만 몰두하는 세태를 이렇게 풍자했다고 한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 말이 만고의 진리도 아니고 신체 장애인 비하로 해석될 여지도 있지만, 적어도 이 땅의 체육인들만큼은 곱씹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체육을 가르치고 배우는 목표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 보라. 체육인들이 끝내 변하지 않는다면 외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