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비롯한 사법개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 1월 시행됨에 따라, 한국의 형사사법 제도와 문화가 근본적인 변화를 맞게 됐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개혁안은 큰 방향에선 국민의 사법참여,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 강화, 공판중심주의 확대 등을 지향하고 있다. 형사절차 선진화를 위한 진전이다.
특히, 새로 도입되는 국민배심제는 근대 사법제도 도입 이래 110여년 유지돼 온 직업법관 재판제도의 변경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목된다. 시민의 형사재판 참여는 역사적으로도 민주주의와 함께한 것이다. 배심 결정이 권고적 효력에 그치는 등의 한계가 있지만, 5년의 시범운영 동안 경험을 쌓고 문제점을 보완하면 좀더 진전된 형태로 시행될 수 있을 것이다.
공판중심주의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된 점 역시 긍정적이다. 검사와 변호인이 서로 증거를 볼 수 있도록 한 ‘증거 개시’ 제도나 입증 계획을 미리 내놓도록 한 ‘공판준비 절차’ 도입으로, 사법절차의 중심은 조사실에서 법정으로 한걸음 더 옮겨지게 됐다. 헌법상의 권리 또는 판례로만 보장돼 왔던 피의자의 진술 거부권과 조사과정에서의 변호인 입회권을 법에 명시하고,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모든 사건으로 확대한 것도 절차적 정의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기존 형소법에서도 법정에서 부인하면 인정하지 않았던 피의자 신문조서와 참고인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영상녹화물 등을 단서로 인정하도록 한 것은 아쉽다. 피고인의 방어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조서는 증거로 사용하지 않는 게 애초 사법개혁의 취지에 맞다. 또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맞서는 재정신청 대상을 확대하면서, 고발사건엔 일부 범죄에만 한정한 것은 검찰의 기소권 남용 방지라는 취지에 어긋난다. 실제로 사회적 파급력이 있는 사건은 시민단체의 고발 사건인 경우가 많다. 변호사가 맡아오던 재정신청 사건의 공소유지를 검사가 맡도록 바꾼 것도 적절치 않다.
개혁안 통과 이후에도 보완할 점은 적지 않다. 우선 진술보다 객관적 증거 수집을 중시하는 수사관행이 세워져야 한다. 검찰은 직접 수사나 기소보다 공소 유지가 더 중요해졌다. 위상과 기능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 법원은 권위주의적 법정 문화를 바꿔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설치 문제에 대해서도 조만간 결론을 내려야 한다. 모두 형사법의 진화를 위해 필요한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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