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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이주노동자한테 최소한의 관용도 없는 나라

등록 2009-10-25 19:08

법무부가 지난 23일 밤 네팔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이자 문화활동가인 미누(본명 미노드 목탄)를 결국 강제출국시켰다. 서울행정법원에 강제퇴거명령 취소소송이 제기된 상태인데도 서둘러 내쫓은 것이다. 한국에서 18년이나 산 그에게 법원에 호소할 기회조차 줄 수 없다는 얘기이다. 이런 태도는 관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이주노동자 정책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국내외 인권단체들이 누누이 지적했듯이,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관용을 베풀 줄 모른다. 인권 보장 장치도 매우 취약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조처보다는 미등록자 색출과 추방에만 힘을 쏟는다. 게다가 단속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또다시 수치와 모멸을 당하고, 심지어 생명을 잃을 위험까지 겪는다.

더는 이런 상태를 방치해선 안 된다.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걸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둘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봐도,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이 꺼리는 일을 맡아 함으로써 중소기업을 지탱해주고 있다. 그들이 없으면 가동을 멈춰야 할 기업들이 널려 있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과 비교해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 고용허가제의 문제점 때문에 사업주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려면 일자리를 잃고 본국으로 돌아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일자리를 옮기기도 쉽지 않고, 옮기기로 했어도 일정 기간 안에 새 일을 구하지 못하면 한국에 더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책은 그들을 3년 동안 노예처럼 부려먹고 내쫓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일회용’ 취급을 받고 있다는 앰네스티 조사관의 최근 지적처럼, 국제 사회가 한국의 이주노동자 현실과 정책을 지켜보고 있다. 심지어 인종차별 측면에서 이 문제를 보는 시각도 있다. 존경받는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도 문제투성이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고통스런 현실은 한국 사회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 가운데 하나다. 한국 사회 구성원 누구도 이 치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요즘 부쩍 ‘국격’을 거론하고 있지만, 이주노동자를 외면하면서 ‘국격’을 말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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