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나라당이 오는 27일 세종시 수정안을 정식으로 입법예고하기로 했다. 행정부처 이전을 백지화해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을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 특별법’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세종시 논란을 빨리 마무리짓기 위해 절차를 조속하게 진행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번 입법예고는 원칙과 절차가 맞지 않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석연 법제처장의 말대로 중앙행정부처가 옮겨가지 않는다면 행정도시특별법은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를 교육과학도시 특별법으로 개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합당하지 않다. 당연히 기존 법안을 폐지하고 새로운 입법 형식을 취하는 게 맞다.
이에 뒤따르는 토지 환매청구권 문제 등도 정부가 책임지고 풀어가야 한다. 토지 보상에 관한 법률은 정부가 공공 목적으로 토지를 수용한 뒤 애초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면 원래 토지 소유자가 환매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정안이 행정도시를 백지화하는 것이라면 원주민들의 환매청구권 제기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정운찬 총리는 “원안이나 수정안이나 공익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환매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법적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에 원주민이 환매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넣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식을 갖춘다 해도 행정도시 조성이라는 애초 계획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더구나 수정안은 대기업에 싼값에 원형지를 공급함으로써 막대한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는 특혜까지 부여하고 있다. 이게 과연 공공 목적을 위한 토지 수용이란 취지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의 당론은 여전히 세종시 원안 추진이고 아직 수정안에 대한 당내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정몽준 대표 역시 지난해 10월까지 원안 추진이 당론이라고 여러 차례 확인했다. 이런 상태에서 한나라당이 정부 쪽과 수정안 입법예고에 합의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내 논란부터 정리하는 게 순서다. 물론 한나라당이 당론 변경을 추진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진지한 토론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표결을 통해 수정안으로 당론을 밀어붙이겠다는 당 지도부의 의도만 엿보인다. 이런 식은 곤란하다. 단순히 숫자의 논리로 밀어붙이겠다면, 현재 국회의원 과반수가 원안에 찬성하는 상황이니 수정안을 제기할 이유조차 없다.
모든 일엔 합당한 순서가 있기 마련이다. 정부와 여당이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수정안을 강행한다면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또다른 심각한 문제를 낳을 것이다. 무리한 내용을 무리한 방법으로 밀어붙이는 게 바로 지금의 정부여당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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