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옛 과학기술부) 국장급 간부들에 대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과기평)의 성접대·향응 사건은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 사이의 추잡한 관계의 한 단면을 생생히 보여준다. 과기평 간부들은 수시로 과기부 간부들을 룸살롱에 모셔 질펀한 술자리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것도 모자라 때로는 ‘2차 성접대’까지 했다고 한다.
게다가 과기평이 공무원들을 접대한 돈은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온 게 아니라 국민들이 낸 세금을 횡령해 만든 비자금이었다. 입으로는 ‘창조적 과학기술 진흥’ 운운하면서도 뒤로는 국민의 혈세를 빼돌려 상급기관 접대에 바빴다. 룸살롱에서 하룻밤에 200만~600만원씩 호기롭게 뿌려대고, 접대여성과 함께 호텔방으로 직행하기도 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비위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처벌은 ‘꼬리자르기’ 식으로 끝난 데 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나서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으나 뒤처리는 과기평 실무팀장 1명 해임, 본부장 2명 정직 처분에 그쳤다. 과기부 공무원들 중 일부는 성접대를 받은 사실까지 확인됐는데도 아무도 징계를 받지 않고 빠져나갔다. 산하기관으로부터 향응을 받는 기술도 뛰어나지만 위기를 모면하는 데도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 셈이다.
교과부는 “징계시효가 끝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핑계에 불과할 뿐이다. 도덕적 불감증이 사건 연루자뿐 아니라 정부 부처 전체에 만연한 탓이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문제가 된 공무원 중 일부는 승진까지 했다고 하니 더 어처구니가 없다. 사실 성접대는 단순한 징계 차원을 넘어 성매매특별법 위반 혐의로 형사처벌해야 할 사안이다. 이 법으로는 공소시효도 아직 넉넉하게 남아 있다. 결국은 비리 척결 의지의 문제다.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의 먹이사슬 관계는 단지 교과부와 과기평만의 문제가 아니다.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향응과 접대로 끈끈히 얽혀 돌아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룸살롱 한구석에서 관료들과 산하기관 간부들 사이에 질펀한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교과부 간부들에 대한 철저한 재조사를 통해 응분의 처벌을 내려야 마땅하다. 비리 혐의가 명확히 드러난 사건마저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공직사회의 기강 확립은 아무리 외쳐봤자 공염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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