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검찰총장이 어제 정식으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국회에서 수사권 조정안이 일부 수정된 채 통과된 데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는 어제 발표한 ‘사퇴 입장’을 통해 “중요 국가기관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서명까지 해서 국민에게 공개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으니 나라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기 만료를 불과 한달 남짓 남겨둔 검찰총장이 굳이 그런 이유로 사퇴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합의된 수사권 조정안이 국회에서 고쳐진 뒤 검찰 내부의 반발이 거셌던 게 직접적인 압박 요인이 됐던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이미 사표를 내놓은 대검 간부들의 처지를 고려해 김 총장이 사퇴함으로써 이들이 복귀할 명분을 줘야 한다는 사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 때문에 김 총장의 사퇴 표명에는, 결연함이나 살신성인의 분위기보다는 떠밀려 물러나는 듯한 어정쩡한 모양새가 더 도드라진다. 아마도 스스로 말했듯이 “항해가 잘못되면 선장이 책임지면 되지 배까지 침몰시킬 필요는 없다”는 검찰 고유의 조직보호 논리에 따른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 역시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관행’에 따른 ‘명분 없는 사퇴’가 아닐 수 없다.
김 총장이 수정안 통과에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확인된 검찰 불신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다. 검·경과 정부가 함께 만든 합의안을 국회가 압도적 찬성 의견으로 수정해 통과시킨 사실 자체가 검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물론 그도 “검사들은 국민들만을 바라보고 국민들과 생각을 같이해야 한다. 겸허한 자세로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당부가 한낱 수사로 끝나지 않으려면 후배 검사들의 맹성이 필요하다.
수사권 조정 문제는 아직 대통령령 절충 과정이 남아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이미 서울 강남권 순환근무 등 부패 방지를 위한 조처에 발빠르게 나섰다. 앞으로 내사권뿐 아니라 수사권 자체를 놓고 국민들의 판정을 받아야 하는 긴 과정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 검찰도 총장 사퇴를 계기로 그동안의 논의 과정을 되짚어보고,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 대오각성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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