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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한 그릇 국밥 같은 영화 ‘변호인’

등록 2013-12-25 19:11수정 2013-12-25 20:34

영화 <변호인>의 관객수가 25일로 250만명을 넘어섰다. 이대로라면 1000만명 돌파도 어렵지 않다고 한다. 영화 자체는 그리 빼어나지도 딱히 모자라지도 않는다는 게 평론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인 것 같다. 웃음 한 숟갈 눈물 한 컵 식의, 휴먼드라마 조리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데도 보는 이의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은 시장통 국밥 같은, 평범하면서도 따뜻한 사람들 얘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눈물샘을 가장 부풀어오르게 하는 걸로는, 밥값을 떼먹고 도망갔던 주인공 변호사가 몇년 만에 국밥집을 다시 찾아온 장면이 꼽힌다. “자고로 묵은 빚은 얼굴하고 발로 갚는 기다. 그기 뭐라고 여태 얹힜노”라며 안아주는 아주머니의 손길은 사람 사는 도리와 정을 말해주고 있다. 속물 변호사가 시국 변호사로 바뀌는 것도 그런 평범한 상식이었다. 거창한 이념도 명쾌한 논리도 아니었다. “이라믄 안 되는 거잖아요. 이런 게 어딨어요?” 짙은 부산 사투리에 담긴 이 두 마디면 충분했다.

 법정에서 권력자들의 오만함을 질타하는 용기조차도 그런 상식과 원칙에서 나온다. “국민이 국가다”라는 주인공의 절규조차 지극히 원론적인 헌법 제1조의 내용일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달달 외운 헌법 조문이지만,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되살아난다.

 이 영화는 30년도 더 된 낡은 시대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도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는 건 그만큼 현실에서 상식과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한다. 관객들은 영화 곳곳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이나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그리고 민주노총 난입 등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단순히 고 노무현 대통령의 경험을 다룬 게 아니다. 생전의 그가 통과했고 분노했던 순간들을 다시 보여주며 우리에게 묻고 있는 거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영화의 제목은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인이다. 변호사는 직업이지만 변호인은 사람이다. 비록 변호사 자격증은 없어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변호인이 되어줄 수 있다. 그 변론은 한 자루의 촛불일 수도 있고, 한 장의 대자보일 수도 있다. 아니 그저 담벼락을 쳐다보고 내뱉는 한마디 욕일 수도 있다. 그런 힘이 모이면 혹독한 한겨울을 나는 것도 그리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처럼 뱃속도 가슴속도 덥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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