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오는 3월부터 금융정보의 국외 이전을 허용해 외국계 금융회사를 이용하는 개인과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박주선 의원(무소속)이 금융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정부는 국내에서 영업 중인 미국과 유럽계 금융회사한테는 고객정보의 처리 업무를 외국 정보처리업체에 맡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이 들어 있다. 이렇게 하면 외국계 금융회사의 고객정보 보호에 대한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이 더욱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
금융정보의 국외 이전 허용은 자유무역협정 협상 초기부터 큰 쟁점이었다. 개인은 물론 기업의 영업비밀 등이 담겨 있는 정보가 외국계 은행·보험·증권사 등을 통해 빠져나가 국외에서 가공·분석·평가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여러가지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사전에 정보 보안과 정보권리 보호 문제에 대한 안전장치를 굳히고 시행하겠다며, 2012년 3월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 때 2년의 유예 기간을 뒀다.
그러나 유예 기간에 안전장치가 마련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취약해졌다. 툭하면 금융회사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졌다. 특히 최근 사상 초유의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고객정보의 외주 관리는 사고 위험을 더욱 키웠다. 그런데 정부는 일부 외국계 은행의 요구를 받아들여 관련 규정을 더 느슨하게 풀어주기로 했다. 국내 외주업체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금융당국이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업체를 어떻게 통제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금융회사가 수집·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의 주인은 국민들이다. 또 정부와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 권리를 엄격히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금융장벽이 많이 허물어졌지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규제는 국제적으로도 합의된 주권 국가의 고유 권한이다. 1990년 유엔 총회 결의로 채택된 유엔인권지침에는 전산화된 개인정보에 대한 각국의 ‘충분한 보호장치’를 못박고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개인정보의 국경간 이전을 제한하는 권고안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자유무역협정을 이유로 금융정보의 국외 이전 규정을 완화해주려 하고 있다. 협정의 후속 조처라지만 이는 반드시 국민 동의를 받아야 할 사안이다.
정부는 미국 당국과 합의한 내용을 당장 국회에 낱낱이 보고하고, 국회는 금융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위험 요소가 없는지 등을 철저하게 검증해서 동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런 절차 없이 3월부터 시행하는 것은 국민 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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