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3일 내란음모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징역 20년,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하는 등 이 사건으로 기소된 6명에게 중형을 구형했다. 지난해 8월28일 압수수색으로 수사가 공개된 지 5개월여 만이다. 그동안 법정에서 4개월 이상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지만,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8월 녹취록 공개로 이미 여론재판의 효과를 선점해왔다. 사건 진행 과정을 돌아보면 과연 철저한 법논리에 따른 판단이 가능할지조차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아르오(RO)라는 내란음모 조직의 존재 여부와, 그에 부합하는 주체적인 준비행위가 있었느냐 하는 점이었다. 검찰은 지난해 5월10일과 12일 두 차례 모임의 녹취록과 제보자 이아무개씨의 진술 및 다른 2명과의 대화 녹음파일, 압수물 등을 핵심 증거로 들고 있다. 두 차례의 5월 모임이 아르오 조직의 비밀 회합이란 전제 아래, 그 자리에서 경기 평택의 물류기지 파괴 등 내란폭동까지 모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피고인 쪽은 당시 북한이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미군의 F-22 스텔스 전투기가 오산공군기지에 도착하는 등 최고조에 이른 한반도 위기가 다소 가라앉은 뒤에 경기도당이 정세강연회를 연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해왔다.
이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게 5월12일 서울 합정동 모임의 녹취록이다. 이 자리에선 ‘한자루총 사상’, ‘송전탑’ 운운하며 “평택 유조창 탱크 폭파”를 거론하는 등 시대착오적이라 할 정도의 생경한 용어가 여럿 등장했다. 다른 녹취록에는 ‘수령님’과 ‘장군님’을 지칭하는 대목도 있다. 변호인단은 녹취록 내용이 700여곳이나 고쳐지는 등 그대로 믿기 어렵다며 전쟁이 우려되는 위기상황에서 항구적 평화체제를 위한 반전평화운동의 일환이었다고 반박해왔지만 피고인들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찮은 대목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검찰 주장대로 내란을 모의했다고 볼 만한 구체적 증거도 부족하다. 검찰 쪽 증인으로 나온 전직 북한공작원 말대로 “130명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건 지하조직 특성과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들 우는 소리 들리는 내란음모 현장이란 상상하기 어렵다.
녹취록에서 드러난 수백 군데 오류는 이 사건 수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유력한 증거다. 대선개입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국정원이 위기돌파용으로 ‘종북몰이’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면 참으로 위험한 불장난이다. 재판부는 여론재판 시도에 흔들리지 말고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그리고 철저히 증거에 입각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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