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이 3일 여수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유조선 ‘우이산’호가 부두에 배를 대면서 과속을 한 탓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고 경위를 자세히 뜯어보면, 초기에 지에스(GS)칼텍스 쪽과 정부가 기민하게 대처만 했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여지가 많았다.
사고가 난 시간은 지난달 31일 오전 9시35분께다. 하지만 최초로 신고된 시간은 20분도 더 지난 9시57분이었다. 해경이 방제정 16척을 급파했으나, 현장에 도착한 것은 10시36분께. 사고 발생 1시간이 지났고, 유출된 기름은 이미 여수 앞바다를 덮치고 있었다. 더욱이 지에스칼텍스는 기름 유출량마저 축소 보고했다. 지에스칼텍스가 사고 직후 밝힌 원유 유출량은 800여ℓ였다. 하지만 3일 해경이 발표한 수치는 16만4000ℓ다. 애초 발표치의 200배가 넘는다. 회사나 경찰이 유출량을 적게 추정함으로써, 초기에 적극적이고 과감한 장비와 인력 투입이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늑장 대응은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도 마찬가지였다. 윤진숙 장관은 사고가 난 지 만 하루가 지난 1일 낮 12시쯤 현장을 방문했다. 윤 장관은 주민들이 뒤늦게 방문한 이유를 묻자 “처음 피해가 크지 않다고 보고받아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축소 보고’ 의혹이 일지 않을 수 없는 발언이다. 게다가 윤 장관은 “보상 문제는 원유사와 보험사가 알아서 하라”며 정부와는 무관하다는 발언을 해 주민들의 성마른 가슴에 불을 댕겼으니, 장관으로서의 자질마저 의심된다.
정부의 안이함은 19년 전 똑같은 유형의 사고가 똑같은 곳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1995년 11월17일 발생한 ‘호남 사파이어’호 사고 때도 사파이어호는 지에스칼텍스 원유 제2부두를 들이받아 배에서 기름이 흘렀다. 이번 ‘우이산’호는 지에스칼텍스 원유 제2부두와 송유관 잔교를 들이받아 송유관에서 기름이 유출된 점이 다를 뿐이다. 그때 만들어진 해상 기름유출 대응 지침이 있을 터인데, 여수시와 여수해경, 항만청 등은 그 지침대로 평소 훈련을 해왔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런 지침을 제대로 보관이나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여수는 호남 사파이어호 사건에 앞서 씨프린스호 기름 유출로 몇 달 동안의 방제 작업과 몇 년 동안의 오염 피해로 고통을 겪은 곳이다. 당시 3826㏊의 양식장이 황폐화하고 1500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더는 어부의 시린 가슴과 남해의 푸른 바다에 상처를 내지 않도록 근본적인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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