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5일 청와대 대변인에 민경욱 전 <한국방송> 앵커를 임명했다. 그는 임명 발표 직전까지 보도국 문화부장으로 일했고, 당일 아침 보도국 편집회의에도 참석했다고 한다. 권력에 대한 감시를 가장 큰 본업으로 삼아야 할 현직 언론인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곧바로 ‘권력의 입’으로 말을 바꿔 타는 행태는 일그러진 언론의 단면을 보여준다.
먼저, 청와대 대변인 제의를 받고 덥석 받아들인 민 부장의 수준 낮은 윤리의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 경력이 20년이 넘는 그는 2011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2년9개월간 한국방송의 대표 뉴스인 <뉴스9>의 앵커를 맡았다. 시청자에겐 당연히 ‘한국방송의 얼굴’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런 그가 앵커를 그만둔 지 불과 4개월여 만에 권력 핵심부로 들어간 것은 그에게 언론의 의미가 출세의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걸 뜻한다. 이번 일로 그와 그가 속했던 한국방송뿐 아니라 언론계 전체가 욕을 얻어먹게 된 것은 참담한 일이다.
한국방송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그처럼 천박한 인물을 방송의 얼굴로 수년간 내세우며 공정방송을 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어온 위선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2011년 위키리크스가 2007년 대선 동향과 관련한 그의 부적절한 언행이 담긴 미국 외교문서를 폭로했을 때도 한국방송은 그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앵커 등의 일을 한 사람은 해당 직무가 끝난 뒤 6개월 이내에 정치활동을 못하게 하는 내부 규정이 있는데도 변명하기에만 급급하다. 이렇게 스스로 ‘권력의 시녀’임을 자임하면서 어떻게 국민에게 수신료 올려달라는 얘기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언론을 대하는 청와대의 태도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권력을 비판·감시하는 언론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언론계를 그저 인력 공급처 정도로 생각하는 편의적인 발상으로는 언론과 권력 간의 건전한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그것은 곧 민주주의의 약화를 초래하게 된다. 언론인, 언론계의 대오각성과 함께 권력의 언론관도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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