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17일 372쪽 분량의 인권조사보고서를 내놓음으로써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접근방식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북한은 인권 문제를 부인할 게 아니라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에서 ‘최고 지도층의 정책과 결정에 따라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반인도 범죄가 자행돼왔다’는 것이다. 정치범수용소 및 일반수용소 수감자, 종교인과 반체제 인사, 탈북 기도자를 대상으로 한 인권침해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에 대한 보호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을 져야 한다’면서, 이의 한 방법으로 유엔 안보리가 북한 정부를 국제형사재판소(ICC)나 유엔 임시재판소를 만들어 회부하고 책임자를 제재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보호 책임은 2005년 유엔 정상회의 결의, 2006년 안보리의 재확인을 거쳐 국제규범으로 수용된 원칙이다.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대통령의 학살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 적용된 바 있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은 인권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 쪽은 이번에도 ‘인권 보호를 빌미로 정권을 교체하려는 시도와 압박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하고 있다. 인권조사위가 권고한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나 임시재판소 설치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러시아 등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다. 당장은 보고서 내용을 강제할 수단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북한 인권 실태와 책임 소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판단 기준을 설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북한이 ‘최악의 인권침해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길은 그릇된 제도와 관행을 바꿔가는 것뿐이다. 보고서가 권고한 정치범수용소 폐쇄, 출신성분에 의한 차별과 주민 감시 폐지, 이동의 자유 보장 및 탈북자 보호 등이 그 일부다. 북한이 이런 요구를 거부할수록 국제사회의 압력은 더 커질 것이다. 북한이 스스로 요구사항을 이행하기 어렵다면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북한 주민의 식량권 보장 등은 혼자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실질적인 인권 개선 조처를 취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북한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체제 불안인 만큼 우선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가 진전된 뒤에는 인권 문제를 논의할 공동위원회 등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북한의 전향적 태도가 가장 중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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