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 관행이 개선은커녕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권력 주변에 맴돌던 정치권 인사나 관료 출신들이 공공기관의 장이나 감사, 사외이사 등의 자리에 선임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정부가 ‘중점관리대상’으로 선정해 강력한 개혁을 주문하고 있는 공공기관 38곳에서도 낙하산 인사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툭하면 공공부문 개혁을 부르짖는 정부가 비정상적인 낙하산 인사를 방치하고 더 나아가 이를 강행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태다.
<한겨레>가 사회공공연구소와 함께 중점관리대상 공공기관 38곳의 기관장과 감사의 선임 배경을 살펴보니, 지난해 11월 이후 2월까지 새로 선임된 기관장 13명이 정치권에서 내려온 인사라고 한다. 감사의 경우 상임감사제를 두고 있는 공공기관 35곳 가운데 11곳에서 정치인 출신을 앉혔다. 모두 여당인 새누리당 출신이거나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진영에 참여한 경력을 지니고 있어 누가 보더라도 ‘보은 인사’다.
공기업이면서 상장기업이기도 한 한국전력은 새누리당 출신의 이강희·조전혁 전 의원과 최교일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선임했다고 17일 공시했다. 정부가 대주주로서 사외이사 추천권이 있다 하더라도 외부 소액주주의 이해와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상장 공기업의 사외이사 자리까지 낙하산으로 채우는 것이야말로 원칙에 반하는 비정상의 전형이다.
정치권 인사나 관료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공공기관 임원 자격을 박탈해선 물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는 생략한 채 전문성이나 능력이 의심스러운 인사들에게 공공기관 경영을 맡기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다. 이런 낙하산 인사들일수록 자율적인 책임경영과 과감한 혁신보다는 정부의 입김이나 내부 비리구조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문제로 지적하는 방만경영이나 만연한 도덕적 해이도 사실은 낙하산 인사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공공부문 개혁은 국가적 과제다. 공공성의 강화를 위해서라도 공공기관은 지금보다 좀더 효율적이고 건전해져야 한다. 그러나 공공기관 임원 선임 권한을 가진 정부가 구태의연한 낙하산 인사 관행과 그에 따른 폐해에는 눈감으면서 공공기관 임직원한테만 일방적 잣대로 개혁을 강요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이런 식의 개혁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고 성공하기도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억지 논리로 ‘노조 길들이기’를 할 게 아니라 국민 모두 반대하는 낙하산 인사 관행부터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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