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재판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된 중국 공문서의 위조 의혹 사건을 둘러싼 정부와 새누리당의 태도가 참으로 가관이다. 검찰-국정원-외교부의 말이 제각기 달라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짐작할 길이 없다. 게다가 조금만 민감한 대목에 이르면 “확인해줄 수 없다”며 도망치기 바쁘다. 그런가 하면 새누리당은 “이 사건을 침소봉대하는 것은 증거 위조만큼이나 중대한 범죄”라며 검찰·국정원에 대한 노골적인 감싸기에 나섰다.
이 사건은 각 기관들끼리 책임을 미루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중국-북한 출입경 기록 등 핵심적 2건의 중국 공문서에 대해 “중국 선양 주재 우리 총영사관이 정식으로 발급 요청한 것은 아니라고 듣고 있다”고 말했다. “문서 모두를 중국 총영사관을 통해 입수했다”는 국정원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한 셈이다. 곤경에 몰린 검찰은 증거조작 의혹을 규명하겠다며 진상조사팀을 구성했으나, 이미 재판 과정에서 수차례 위조 가능성이 제기됐는데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게 검찰이어서 영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의혹의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국정원은 “외교적 마찰을 고려해 참고 있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요즘은 입을 굳게 닫고 있다.
검찰·국정원에 대한 새누리당의 비호는 김진태 의원의 발언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다. 김 의원은 1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중국 정부를 선진국이 아니라고 비하하며 “그런 국가들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빈정거렸다. 김 의원은 심지어 “중국이 북한을 돕기 위해 허위 문서를 우리 쪽에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집권여당 의원이 나서서 중국과의 외교분쟁 불씨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주목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다. 박 대통령은 요즘 안현수 선수 문제를 비롯해 ‘염전 노예’,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 등 사회적 이목을 끄는 모든 사건에 대해 일일이 언급하고 있다. ‘만기친람’ 리더십이 화제에 오를 정도다. 그런데 정작 국가의 위신과 신뢰가 걸린 증거조작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사안의 성격상 이런 사건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해야 마땅한데도 입을 열지 않는다. “소설보다 현실이 더 기가 막힌 일들이 많다고 하더니 정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뿌리를 뽑아야 한다.” ‘염전 노예’에 대한 박 대통령의 발언은 오히려 증거조작 의혹 사건에 더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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