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했다. 강씨는 무죄 선고 직후 “어떤 방식으로든 유감을 표시해줬으면 한다”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그런 강씨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해도 모자랄 검찰이 거꾸로 매를 들고 나선 격이다.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게 딱 이런 경우일 것이다.
검찰은 과거 대법원이 인정한 바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적감정 결과가 이번 재심에서 배척되었다며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무죄 선고는 이미 따져볼 것 다 따져보고 내려진 것이다. 1991년 감정 이후 국과수에서 2차례에 걸쳐 감정을 했고 여러 국내 감정 전문가들이 감정을 했으나, 그 모든 결과가 첫번째 국과수 감정 결과와 반대였다. 검찰 쪽 논리대로라면 수많은 필적 모두를 강씨가 사후조작했다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생떼일 뿐이다.
게다가 강씨는 간암세포 제거수술을 받은 뒤 현재 투병중인 중환자다. 검찰의 ‘시간 끌기’는 강씨의 생명을 좀벌레처럼 갉아먹을 것이다. 금전적인 배상도 늦어진다. 형사보상금이나 손해배상 청구소송 모두 무죄 판결이 확정되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상고를 하려거든 강씨가 치러야 할 정신적 신체적 손상만큼의 몫을 검사도 감내해야 공평한 게임이 성립된다. 하지만 검사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더라도 직권남용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국가와 법이라는 이름 뒤에 숨는다.
검찰은 유달리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시국사건에 집요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2007년부터 최근까지 7년간 무죄를 선고받은 재심 시국사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검찰이 불복한 사건이 절반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48년 만에 무죄가 나왔으나 검찰이 상고한 ‘1차 인민혁명당 사건’을 비롯해 유럽 간첩단 사건, 조총련 간첩사건, 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하지만 검찰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자에게는 관대하다. 최근만 해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해 재상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2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 대해서도 상고를 포기했고, 민주당 이석현 의원과 새누리당 이성헌 의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검찰에는 이제 더 기대할 것이 없다. 남은 건 대법원 몫이다. 대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 당시 이 사건 서류를 3년 이상 들여다봤다. 이미 충분한 심리가 이뤄진 만큼 대법원이 진실규명을 위한 최종단계를 서둘러 마무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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