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25일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상향식 공천을 원칙으로 하는 내용의 당헌·당규 개정안을 가결했다. 이로써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공식적으로 백지화됐다. 민주당도 이 문제를 놓고 내부 의견을 수렴하고 있지만 사실상 기초공천을 그대로 유지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지난 대선 당시 여야의 공통 공약이었던 기초선거 공천 폐지는 완전히 폐지될 운명에 처했다.
정치권의 이런 결정은 선거 공약이 얼마나 거짓과 기만에 가득 찬 대국민 눈속임인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사실 기초선거 공천 폐지의 정치적 의미나 효과, 위헌성 여부 등을 놓고는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왔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천 폐지 방침을 정한 뒤 이것이 마치 정치 발전을 위한 구국의 결단인 양 떠벌렸다. 그래 놓고 선거가 끝나자 온갖 구실을 대며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이런 정치권의 한심한 행태를 보면서 국민의 정치적 실망과 불신이 깊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공약 백지화라는 결과만을 놓고 보면 여야 모두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번 사안은 전적으로 새누리당의 책임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7월 전당원 투표를 통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했으나 새누리당은 대선이 끝난 뒤 기초공천 강행 방침을 완강히 밀어붙였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돼 이 문제를 논의해왔으나 새누리당은 전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새누리당의 공세에 밀려 당론을 접으려는 민주당의 태도도 한심하지만 새누리당에 비할 바가 아니다. 거기다 새누리당은 공약 폐기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공약의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 역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않고 있다.
새누리당이 대선 공약 폐기의 대안이라며 내놓은 상향식 공천도 허점투성이다. 애초 없애기로 한 전략공천을 가능하도록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새누리당이 당헌·당규 개정 내용에 ‘전략공천 병행’을 포함시키면서 새누리당 안에서도 “상향식 공천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조처”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에서는 대선 과정에서 대선기획단 등에 몸담은 ‘친박 인사’들이 전략공천 대상자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선이 쉬운 곳은 당 지도부 관할로 하겠다는 것이냐” “그러려면 강남 3구의 이름을 ‘새누리당 특구’나 ‘청와대 특구’로 하라”는 따위의 반발이 이 지역 예비후보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새누리당의 오만함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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