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넘어섰다. 규모가 사상 최대라는 것뿐만 아니라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비은행권 부채가 절반을 넘어서는 등 부채의 질도 악화됐다. 주춤하던 증가율도 지난해 4분기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도 정부 대책은 한가하기 그지없다. 정책 일관성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27일 정부가 발표한 ‘가계부채 구조개선 촉진방안’을 보면 눈에 띄는 게 별로 없다. 2017년 말까지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15.9%(2013년 말)에서 40%로 높이고, 163.8%(2012년 말)인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5%포인트 낮추겠다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실현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이는 사실상 가계부채 규모나 증가율 등은 현행대로 유지하고 단지 대출자의 부담이나 금리 변동시의 충격 등만 완화해 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정도의 대책으로는 가계부채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가계부채를 대하는 정부 정책이 상충한다는 점이다. 가계부채가 이처럼 급증한 데는 주택 관련 대출 증가가 큰 몫을 했다. 이는 정부의 부동산정책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정부는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명분으로 돈 빌려 집 사고, 돈 빌려 전세금 조달하라는 정책을 펴왔다. 가계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빚 늘려 부동산경기 살리려는 정부 정책부터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그럴듯한 대책을 내놔봤자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간단히 말해 쓸 돈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가계부채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계소득을 늘려주는 길밖에 없다. 문제는 가계소득을 늘리려는 정부 정책이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려 가계소득을 높여주고, 부동산 경기를 부양시켜 자산소득을 늘려주겠다는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전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이미 실패했고, 후자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런 정책을 지속하는 한 가계부채는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늘어나는 게 불가피하다.
정부는 이제라도 편중된 부의 재분배를 통해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는 등 구조적인 문제에 손을 대야 한다. 지난해 최하위 소득계층인 1분위의 부채 증가율이 무려 24%에 이른 반면 최고 소득계층인 5분위의 부채 증가율은 0%였음은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차별대우 해소 등 우리 사회의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거시적인 접근 없이는 근본적인 가계부채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줄푸세’의 부활이다 [오피니언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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