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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박 대통령, ‘비정상의 극치’ 국정원 이대로 둘 텐가

등록 2014-03-09 19:04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을 둘러싼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국가정보원 협력자 김아무개씨가 유서에서 가짜 서류 제작비를 거론하는 등 국정원의 은폐 조작 혐의가 짙어지면서 검찰이 공식 수사 체제로 전환했다. 사건은 이제 단순히 중국 공문서 위조의 진상을 밝히는 것 정도를 넘어서 국가기관의 국기문란 사건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으로만 보면 국정원이 과연 정상적인 국가기관으로서 존립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 지금의 국정원은 온통 비정상투성이다. 간첩을 잡으라고 했더니 문서조작 등을 통해 간첩을 만들어내고, 문제가 커지자 시종일관 이를 은폐하기 위해 또다른 조작을 거듭해온 정황이 짙다. 국정원은 모든 책임을 민간 협력자에게 덮어씌우고 자신들은 교묘히 빠져나갈 궁리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역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국정원이 위조한 문서임을 알고도 묵인했다면 검찰도 국정원의 공범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의 핵심기관 두 곳이 총체적 난국에 빠진 양상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집권세력은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기 바쁘다. 간첩 혐의 수사와 증거조작 의혹이 별개라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증거조작 의혹도 명백히 규명해야 하지만 사건의 본질은 간첩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거조작 여부는 곁가지이고 간첩 수사가 본안이라는 이야기인데, 앞뒤가 바뀌어도 크게 바뀌었다. 이는 증거에 입각해 유무죄를 가린다는 형사법의 기본원칙에도 어긋난다. 증거가 조작됐다면 아무리 간첩으로 의심이 가더라도 유죄일 수 없다. 더욱이 국가기관이 사사건건 증거조작에 개입했다면 이는 국가 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범죄다.

사회 전 분야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을 둘러싼 비정상적 상황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요즘 안현수 선수 문제 등 이런저런 사안에 대해 일일이 언급하며 ‘깨알 지시’라는 말을 듣고 있다. 하지만 70~80년대에나 있을 법한 후진적인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박 대통령의 이상한 침묵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정국을 소용돌이치게 했던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 국정원의 비정상적 행태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소극적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행태는 국정원을 제대로 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하기보다는 정권의 충실한 하수인으로 남겨두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박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지금의 국정원부터 정상화시켜야 한다. 남재준 원장 체제의 국정원은 여태껏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비정상의 진원지였다. 이제는 박 대통령이 나서서 매듭을 풀어야 할 때가 됐다. 조작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철저히 묻는 등 국정원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박 대통령의 결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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