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외이사의 일차적인 역할은 경영진 감시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경영진 감시자가 아닌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 이익 보호를 위한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식의 사외이사 제도는 없느니만 못하다. 사외이사제가 경영진 견제와 경영활동 감시라는 본래 취지에 맞게 운용될 수 있도록 전면 개혁해야 한다.
특히 재벌기업의 경우, 사외이사제가 재벌과 권력을 잇는 연결고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9일 <재벌닷컴>과 <연합뉴스>에 따르면, 10대 재벌그룹 상장사 93개사가 올해 주총에서 새로 선임하는 사외이사는 10명 중 4명꼴로 청와대나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 이른바 권력기관 출신이다. 재벌기업들이 퇴직 고위관료나 정치권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이유는 뻔하다. 재벌은 자신의 이익 보호를 위해 이들을 로비스트로 활용하고, 이들은 그 대가로 적잖은 보수를 챙기는 공생관계를 유지한다.
재벌 총수와 특수관계에 있는 이들이 대거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올해 재선임되거나 새로 선임되는 사외이사 중 교수 출신이 38.1%로 가장 많지만 단순히 전문성만을 기준으로 선임되지는 않는다. 재벌 총수와 직간접적인 친분관계가 있어야만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건 이런 구조 속에서 어쩌면 당연하다.
비정상적인 이런 사외이사제가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이를 둘러싼 공생체제가 강고하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제를 개혁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왜곡된 사외이사제의 최대 수혜자다. 기업들도 제구실을 못하는 사외이사제 덕분에 귀찮은 외부 견제를 받지 않고 마음대로 경영을 할 수 있는데 굳이 이를 바로잡으려 하겠는가.
결국 왜곡된 사외이사제를 개혁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정권 차원의 강력한 의지다. 정부의 해당 부처가 개혁안을 마련한다고 해봤자 조삼모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사외이사 자격과 선임 방식 및 운용 행태 등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대통령이나 총리 직속의 ‘사외이사제 개혁단’ 구성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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